결혼 독신 이혼
고린도전서7:1-16
바울 시대에 결혼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결혼과 출산은 중요하고 장려할 일이라는 생각과 또 한 가지는 소수의 철학자들의 의견으로 결혼은 지혜로운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므로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입니다. 두 가지의 견해가 함께 존재하던 사회에 살던 성도들에게 바울은 결혼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가르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이며 작은 교회이며 천국의 모형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제도이며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연합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극단적인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적인 방종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었고 정반대로 극단적인 금욕주의의를 주징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독신 예찬론자가 아닙니다. 신앙이 좋은 청년들 가운데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며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여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이 정상적인 창조의 원리입니다. 고린도처럼 성적으로 개방된 도시에서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원리를 따라 정상적이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바울의 대답으로 하나님은 결혼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며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하며 친밀감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부부로 사는 것이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 더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3절)
부부가 의무를 다 한다는 말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매여 사는 관계이기에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합니다. 결혼하였으면 나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이기심을 버리고 상대방의 행복을 위하여 매여 사는 것입니다.(4절) 우리 마음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까? 유혹도 있겠으나 아내를 생각하고 남편을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하고 절제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배우자를 향하여 "나는 당신을 위한 존재입니다"라고 할 수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누가 누구에게 종속되거나,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함으로 스스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6절) 이 말은 부부간의 일이란 가정마다 부부마다 다 특성이 다르고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강제로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믿지 않는 배우자와 살고 있는 자들에게 권면합니다.(12절) 처음 예수님을 믿은 1세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결혼한 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당연히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모두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혼생활을 통하여 믿지 않는 배우자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예수 믿게 해주신 것은 나를 통하여 상대방을 구원하라고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14절) 불신자와 함께 사는 사람은 배우자의 구원에 대하여 항상 소망을 가져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배우자를 통하여 믿지 않는 배우자를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 (16절.행16:31) 구원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 놓고 혼인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믿음의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영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는가!
부부도 영역이 있다
남자가 부뚜막 살림을 간섭하면 계집을 못 거느린다는 옛말이 있다. 부부지간에도 각자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업 주부는 물론이고 가사를 분담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도 남편은 아내의 영역을 존중해 줘야 한다. 남편이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어 이것저것 따지고 타박하는 것은 아내가 남편 직장에 들이닥쳐 책상 서랍을 뒤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부는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존재라고 한다. 화초도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죽어버린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오늘 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