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질 수 없는 몸
고린도전서1:10-17
교회 소속감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독선, 파벌은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로, 모두가 같은 말을 하라. 둘째로, 너희 가운데 분쟁을 없애라. 셋째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똑같은 것 외워서 똑같이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10절) 교회가 획일적인 하나의 색깔만 가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순수한 복음,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면 똑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성경을 말하고 복음을 말하면 말이 똑같아집니다.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11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가 분열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몸이 찢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존경할만한 리더가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그러나 한 리더만 지나치게 좋아하여 파당을 형성하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당 짓는 것은 예수님보다 인간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그의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 2:22절) 인간은 누구나 다 곧 꺼질 숨을 내 쉬고 있을 뿐입니다. 숨이 넘어가면 다 끝이 납니다. 대단하다는 사람도 가고 나면 흔적도 없어집니다. 바울을 의지하고 있다가 바울이 죽으면. 아볼로를 의지하고 있다가 아볼로가 죽으면 어떨 것입니까?
먼저 바울파라고 불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권합니다. 바울은 직접 교육시키고 세운 고린도교회에서 사도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바울을 변호하고 끝까지 바울의 편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들이 바울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서 자신들은 바울파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자신을 편들어 주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의 말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질책을 합니다.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은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소수의 사람들, 곧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만 세례를 준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고 누구의 사람도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을 중심으로 파벌이 생긴 것 같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만이 남아서 그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17절에 바울은 또한 그 복음의 전파를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17절) 말의 지혜란 수사학적인 기교를 의미합니다. 1장부터 3장까지 철학 혹은 지혜란 말이 열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말의 지혜나 철학적 탐구나 논쟁은 교회를 메마르게 만들고 복음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말씀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할 때 수사학적인 기교를 쓰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풍성하게 깊게 설명하려면 수사학적인 기법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복음이 희미해질 정도로 기교를 쓰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전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복음의 본질입니다. 오늘 현대에 이르러 십자가에 숨겨져 있는 피묻은 복음을 생생하게 전하기보다는 포장하는데 정신을 쏟습니다. 복음위에 화려한 말을 자꾸 덧칠하다보니 복음이 희미해졌습니다. 보기 좋게 포장된 십자가만을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바울은 다짐합니다. 십자가가 헛되지 않기 위하여 말의 지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에는 큰 소리를 내는 악기도 있지만 작은 소리를 내야 하는 악기도 있다. 작은 소리지만 그 작은 소리가 없으면 안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주 연주되어야 할 악기도 있지만 드물게 연주되어야 할 악기도 있다.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그 악기가 없으면 음악이 되지를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휘자의 지휘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악보는 가지고 있지만 연주를 하지 않는 다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완벽한 연주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설프기도 했었고 틀리기도 했었다. 심지어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왕에게 넘기려고 하였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지휘자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순종하다보면 아름다운 연주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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