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너희 형제로다
고린도전서6:1-11
고린도교회에서 성도들 간에 다툼을 법정에 고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도들끼리 생긴 문제요. 교회 울타리 안에서 해결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세상법정을 찾은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잘못을 바르게 판단하여 바른 길로 이끌어주어야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판단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결국은 내가 손해를 보기가 싫고 내 것을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묻기 보다는 법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성도들은 할 수만 있으면 서로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아야 합니다.
칼빈(Calvin)은 성도는 세상 법정에 절대로 설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역시 불가피한 상황에 따라서는 세상 법정에 송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한 이후에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사용하는 차선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세상 법정으로부터 출두 명령을 받았을 때 마땅히 법의 절차를 따라 해명할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며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과 동시에 일반 국가 시민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법의 정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거듭나지 않는 세상의 재판장은 ‘불의한 자들’(1절) ‘경히 여김을 받는 자“(4절)라고 한 이유는 판사의 자질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 하나님의 일을 판단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의 문제를 판단하도록 하는 것을 세상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의 위에 두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주장과 이익을 위하여 불신자 앞에 가서 재판을 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질 것이고 성도의 관계는 깨지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 니다.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5절) 성도간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줄 수 있는 지혜가 없음이 안타깝습니다.형제이거늘 형은 아우의 이익을 챙겨 주고 아우는 형의 이익을 챙겨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서로가 이익을 찾기 위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판단을 받아야 하는가?“6절)라고 말합니다. “뚜렷한 허물”(7절)이라는 말은 완전한 ‘패배, 실패’라는 말입니다. 누구의 잘못과 상관없이,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다 실패한 것입니다. 재판에서 이겼다 할지라도 정의의 승리도 아니며, 만세를 불러도 다 잃은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속아주고, 불의한 일을 당하고, 나의 권리를 내어 주고 내어 주는 편이 낫다고 합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내가 손해 봄으로 잃은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큼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면 반드시 해결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해결 못할 문제도 성도는 사랑으로 풀어내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신자는 세상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약속을 받고 사는 존재입니다.
성경을 읽으십니까?
방송사에서는 아나운서에게 원고를 주면서 "아무개 아나운서, 이거 읽으세요" 하는 것은 큰 실례로 되어 있다. 읽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개 아나운서, 이거 방송하세요" 해야 한다. 방송하라는 것은 그 원고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이다. 아나운서가 방송하는 자세로 성경을 읽으시기 바란다. 성경을 읽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글자를 읽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이든지 성경을 읽는 것은 유익하다. 어느 가정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부모님 속을 좀 썩였다. 부모님은 이 아들에게 성경 한 장 읽으면 천 원씩 준다고 했더니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떤 날은 오십 장을 읽었다고 하면서 오만 원을 받아가더란다. 그런데 그 아들이 점점 변화되기 시작하더니 지금 목사가 되어서 대전에서 목회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