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희망은 있다
욥기11:1-20
욥의 세 번째 친구인 소발의 충고입니다. 소발은 욥이 말이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2절) 재난을 당한 자는 천 번 만 번 더 떠오르는 생각 있을 겁니다. 첫째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둘째는 이 고난의 의미를 무엇인가? 욥기는 이 두 가지의 주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발은 말하기를 계속하여 지금 옳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데 자네가 하나님 앞에 가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4절) 하나님이 직접 욥에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5절) 욥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지은 죄로 대로 벌하였다면 지금 이보다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6절) 하나님의 오묘하심과 하나님의 높으심과 하나님의 깊으심과 하나님의 크심과 하나님의 넓으심을 인간이 알 수 있겠는가?(7-9절) 그런데 하나님의 판결에 대하여 누가 항의 할 수 있단 말인가?(10) 이 지경이 되어서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주제 넘은 일이라는 겁니다.(10절) 하나님은 인간의 거짓된 마음을 다 아시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11절)
욥의 친구들의 주장을 들어 보면 그들의 신앙도 괜찮아 보이고 옳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욥은 불신앙적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도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보면 하나님은 그 친구들이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욥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친구들이 던지는 말은 오래도록 전수되어 내려온 지식 보고서와 같은 말입니다. 거의 다 옳으나 욥에게 적절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으나 사람을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피하여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광풍으로 그를 찾아 내시고 결국은 니느웨로 보냈습니다. 욥은 도망가다 잡힌 사람도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오히려 인정 하시므로 사탄에게 마음대로 욥을 치되 생명만은 손대지 말라고 하나님이 허용하신 울타리 안에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무섭게 욥을 몰아치던 소발이 이제는 욥에게 회복의 가능성을 내비치기 시작합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맞습니다. 강력하게 추궁하다가 그러나 하나님 안에 다시 돌아오기 말하면 희망이 있다고 결론을 맺습니다.(18절) 악한 자는 그 악이 쌓일 때까지 차오를 때까지 그냥 두다가 마지막 심판을 받고 악인의 희망은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20절)
음식을 버리는 쓰레기통은 쓰레기가 차기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차면 갖다 버리지만 누워서 자는 잠자리는 매일 치웁니다. “죄를 벗어던지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이제는 떳떳이 고개를 들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을 것이며(15절) 모든 상처도 흔적 없이 다 회복되게 될 것이며.(16절) 밤이 지나고 새벽에 동이 트며 해가 밝아오듯 밝은 날을 보게될 것이고.(17절)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가 있으며.(18절) 욥이 잘되니 욥을 떠났던 자들이 돌아온다고 합니다.(19절) 우리도 어디에 부딪치고 힘들면 아프다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욥의 탄식은 고통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욥은 친구들의 옳은 말을 듣고 더 아팠습니다. 이웃의 작은 지식을 가지고 고난을 해석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공감과 깊은 사랑을 품고 함께 있는 것이 오히려 그를 낫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튜브 방송 [박근상매일성경]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장수비결
하비라는 노인이 110번째 생일날 기자가 찾아와 물었다. “장수 비결은 무엇입니까?” “나야 건강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담배를 절대 피우지 않고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밤 10시만 되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고 매일 하루에 5km 정도를 걷지” 기자가 물었다. “우리 삼촌도 할아버지와 꼭같이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62세에 돌아가셨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자네 삼촌은 그런 규칙적인 생활을 나만큼 오랫동안 계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