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잘 받으라고?
욥기5:17-27
엘리바스는 우리가 연구하는 것을 잘 들어 보고 고집 부리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합니다.(27절) 엘리바스는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은 경험의 한계가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자기 경험을 내세웠으나 경험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입니다. 누구에게 충고할 때에 자신이 분명히 경험 한 것이라 할지라도 한계를 인정하며 조심해야합니다. 인간은 지혜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엄청난 일들에 비하면 인간의 지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인간을 구원하시며 그 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를 인간의 지혜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영적 체험도 한계가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내게는 큰 은혜가 되고 유익한 경험 일지라도 그것을 객관화 시켜서 나처럼 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절제가 필요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바스는 고난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교육시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욥에게 징계를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상상도 안 되는 이런 일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욥 자신도 모르고 엘리바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교훈들을 잘 들어 보면 우리가 귀를 기울여 매우 진리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치 히12장 10-11절 말씀을 듣는 듯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아니하시는 것이 버리셨다는 의미입니다.(롬2장)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는 것 하나님의 손대지 않는 것이 그것이 심판입니다. 고질적인 악한 습관과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불가불 손을 대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 큰일 작은 일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그 일로 망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 일으켜 주십니다.(19절) 엘리바스는 이론 논리로 욥에게 회복이 은혜가 임하기를 될 것이라고 욥에게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이 연구 결과를 가지고 충고한 것들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고난이 끝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욥의 억지 주장은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기는 태도라고 하였습니다.(17절) 엘리바스는 타인이 받는 고난을 피상적으로 보고 쉽게 단정하는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인간이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속에 있습니다.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오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징계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징계중에 베푸시는 은혜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비록 성경을 근거하여 조언하고 있을지라도 자기를 성경의 권위와 동일시 해서는 안됩니다. 고통 받는 사람은 몸은 비록 편치 않지만, 그렇다고 정신까지 흐린 것은 아닙니다. 상처 받는 사람은 말로 심한 타격을 가하면 충격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지도 못하고, 그것을 입증할 만한 확고한 사실들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에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상처 받은 친구를 사랑해 주는 편이 더 낫습니다. 만일 진정으로 해줘야 할 말이 생각나거든 책망이나 비난을 자제하고, 위로와 사랑을 담아 전달해야 합니다. 책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욥처럼 온몸에 진물이 흐르고 고통을 겪는 친구에게는 책망이나 충고는 금물입니다. 교만하고 배려가 없는 조언은 고난 받는 자를 더 낙심하게 합니다. 엘리바스를 보면 어디에도 욥을 위로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자세리 들으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을 섬기는 농부의 방법
크리소스톰이 자신의 교구 가운데 사제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농부 한 사람을 잘 가르쳐서 사제로 임명하였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주교의 관구로 돌아온 뒤 그의 마음은 편칠 않았다. 준비가 부족한 사람을 사제로 세우다니 내가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그래서 크리소스톰은 그곳을 다시 찾아갔다. 예배가 시작된 지 몇 분이 지난 뒤에 교회로 들어갔다. 예배를 어떻게 인도하는지 지켜보기 위해서 기둥 뒤에 숨어 있었다. 예배를 한동안 지켜보던 크리소스톰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빛나는 얼굴로 기도를 드리고, 짧은 설교에 열정을 쏟아 붓고,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제를 본 적이 없었다. 예배가 끝난 후 크리소스톰은 ????그대가 나를 축복해 주시오. 나는 당신처럼 마음속에 불같은 열정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제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소.???? 그러자 그 사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감독님, 다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 있습니까?????
-오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