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를 아시죠?
욥기10:1-12
세상 사람들은 고난 중에 있을 때 부르짖을 대상이 없기에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신자는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원통함을 참기가 어려울 때에 괴로운 것이 대하여 하나님께 다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고난이 올 때 우울해지고 냉소적이 되고 환경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잿더미 주저 앉아 있는 원하지 않으십니다. 욥이 하나님에게 질문을 하기를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존재를 이렇게 아프게 하려고 지으셨는가? 창조의 목적에 대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식으로 창조신 생명을 다루시려거든 차라리 일찌감치 데려가시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묻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생각하는 것과 기도는 틀립니다. 물론 생각은 기도에 시작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생각만 하고 앉아 있다가 떠나가면 안 됩니다. 생각하고 그리고 입을 열기 시작해야 합니다. 속으로 삭히지 말고 입으로 토해 내야 합니다. 속으로만 하는 기도만 하지 말고 소리를 내며 발설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우리를 만드실 때 좋은 의도로 만드셨을 텐데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으면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됩니다. 꼭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욥의 질문들을 들어 보면 고통 가운데서도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으신 순간부터 땅에서 데려가시는 순간까지 한 순간도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지 않으시고 끈질기게 함께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손으로 지은 존재가 아닙니까? 저를 지어 놓고 이렇게 멸시하는 겁니까? 어찌하여 악인들이 꾸미는 일은 좋게 여기시고 저를 못 마땅해 생각합니까?(3절)
욥은 하나님께서 그의 친구처럼 겉 모습만 보고 판단하시고 외면하시는 것이 아닌가를 묻고 있습니다.(4절) 그런데 왜 나의 허물을 찾아내려고 이렇게 자꾸 들추십니까? 말합니다.(6절) “내가 악하지 않은 것을 아시나이다”(7절) 주님 아시죠? 내가 결코 악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죠? 주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저를 아시지요? 결코 벗어나지도 안할 겁니다. 원통함을 풀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신체에 주님이 지으시지 않은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아프게 하시나요? 이러다가 나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이 몸을 이렇게 학대하시다가 허무하게 흙으로 돌아가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는 것입니까?(8절)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젓을 쏟으면 버터가 되고 치즈가 되는 것처럼 나를 엉켜 붙게 만들어서 나를 잉태케 하고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자라게 하시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10절) 자기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고백합니다. 몸도 뼈도 근육도 피부도 만드시고 이제까지 성장하게 하시고 볼살펴 주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12절)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수고 분해하십니다. 다 망가진 것 같고 뭉그러진 것 같지만 잡아 다니고 펴시고 그래서 회복시키십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예전보다 훨씬 더 견고하게 새롭게 만드셔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하나님 나를 아시죠” 주님이 나를 지으셨고 이제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어떤 고난속에서도 이겨내게 하시는 주님께 의탁합니다. 욥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묘비명
어떤 사나이가 묘지에 갔다가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보았다. “변호사, 정직한 사람, 존 켈리 이곳에 묻히다‘ 그러자 사나이가 탄성을 질렀다. ”아 이럴 수가 있나 한 무덤에 세 사람이 묻혀 있다니..“
-오늘아침-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