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교훈의 한계
욥기8:1-10
두 번째 친구인 빌닷도 욥이 하는 말을 다 듣고 엘리바스와 논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입을 엽니다. 빌닷도 역시 욥의 고난을 因果應報 추수의 법칙으로 풀려고 합니다. 그의 짧은 신학적인 지식과 과거의 전통과 옛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과 자신이 관찰 해온 것들을 동원하여 욥을 깨우치려고 애를 씁니다. 큰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무리 옳고 바른 말을 하여도 사람을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빌닷의 의도는 어떻게 하든지 욥이 빨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했으나 욥은 도움을 받지 못 했습니다.
빌닷은 엘리바스 보다 더 강력하고 직설적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입을 다물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것입니다.(2절) 하나님은 불의지 않고 하나님은 잘 못하는 일이 없다는 말을 하며 지금 욥이 겪고 있는 고난은 부당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3절)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언제나 공의롭고 불의하지 않으며 잘못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빌닷이 생각에는 하나님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항의하고 있는 욥을 보면서 욥이 당하는 일을 정당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강하게 다 다그칩니다. ”하나님의 너를 심판을 하시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네가 판단하고 있구나“라고 비판합니다.
빌닷을 해서는 안될 말을 합니다. 욥의 자녀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자식들이 죄를 지은 결과라고 말합니다. “네 자녀들이 주게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버렸다”(4절) 빌닷은 욥의 열 자녀의 죽음에 인과응보의 법칙을 적용시키는 비정함을 보여줍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 욥에게 자녀의 죽음은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무자비한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반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사탄의 언어일 수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욥이 주먹으로 빌닷의 입을 내지르지 않은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영웅적인 인내심을 가진 욥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빌닷은 욥에게 신학 지식을 가르쳤으나 욥은 그런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신학은 굳건하고 건전하고 확실했습니다. 욥은 이런 상황이 죄로 인한 것이라면 기꺼이 고백하겠다는 겸손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옳은 말 바른 말이라고 하여 다 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정말 유익한가 그것이 덕을 세우는 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고전 10:23~24) 그래야 영혼을 전 수 가 있습니다.
빌닷이 계속 말하기를 “ 자녀들이 죄를 지었으므로 다 죽었을지라도 ...하나님을 찾고 간구하고..청결하고 정직하면..동보시고 평안하게 하실 것이고 네 시작은 미약 하지만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충고합니다. 빌닷의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가 아니라 그의 견해였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는 일을 시작할 때에는 초라하나 나중에 복을 받아 창대하게 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한 구절만 보면 아주 좋아 보이지만 전체를 놓고 볼 때를 욥에게는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한 구절만 딱 뽑아서 사용할 때에 앞뒤 문맥을 살펴봐야지 구미가 당긴다고 마구 쓰면 안됩니다. 빌닷의 말은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욥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후로도 빌닷은 예 사람의 교훈을 들먹이면서 분별없는 이론을 늘어놓았습니다. 그의 조언은 아주 진부하고 평범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사람을 세워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더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문맥으로 성경 읽기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구절은 분명히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본문을 마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경향이 있다. 문맥의 범위를 넓혀서 살펴보면, 이 본문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 아니라, 수아 사람 빌닷의 말이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이 한 말도 아니다. 이런 말을 한 빌닷은 나중에 하나님의 꾸중을 들었다.(42:7) 빌닷의 이 말은 당시 잘 알려진 격언이었거나, 아니면 빌닷이 만들어낸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 말을 인용 할 수는 있다. 다만, 이 구절만 따로 떼어내어서 인용할 경우에는 우선 문맥을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주어진 것인지, 또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긍정적인 의미를 부각 시켜서 사업장의 형통을 비는 말씀으로 이 말씀을 쓰려 한다면 인용할 수 있는 말씀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역자들은 신중하게, 그리고 주의 깊게 본문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듣는 청중은 설교자의 말을 들으면서 성경을 읽는 방식을 배우기 때문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