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영광을 돌리지 않은 자
다니엘 5장 17-24
벨사살은 다니엘이 누구인가를 잘 알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이 것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에서 잡혀온 포로 중에 한 사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니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벨사살이 제안하기를 만일 벽에 쓴 글씨를 해석해 준다면 자주 옷을 입히고 금사슬 목에 걸어 주고 나라의 3인자가 되게 해주리라고 약속합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큰 일을 한 사람인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약속한 예물과 명예를 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면서 내가 할 일을 하겠노라고 합니다. 벨사살은 다니엘도 별수 없이 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은 그런 탐관오리 같은 저 바빌론에 널려져 있는 박사들이나 술객들을 정도로 생각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지금 왕이 던진 미끼를 물지 아니 했습니다. 다니엘에 글씨를 해석하고자 하는 이유는 물질이나 명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하여 조금도 관심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교만한 벨사살이 느부갓네살 왕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기를 원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글씨를 해석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청지기는 말이든지 일이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 하는 것처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럼 하라고 했습니다.(벹전4:11)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찬송가 446장) 내게서 능력을 가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말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다니엘은 분명히 밝힙니다.
다니엘은 벨사살에게 그의 선친 왕인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를 합니다. 벨사살이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고 겸손하기룰 원하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말을 마친 후에 벨사살 왕이여 왕은 그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 하였다.”(22절) 그의 선친인 느부갓네살 왕 왕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다 보고 듣고 깨닫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은 “벨사살이여”라고 부르면서 하늘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 할 때 쓰는 그 기구를 꺼내다가 후궁들과 술을 부어 마시고 술에 취하여 자신들의 신을 찬양했다고 벨사살에게 강력히 경고합니다.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것은 삶에서 죽음으로 선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재판정의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것처럼 직접 벽에다가 손으로 글씨를 쓰신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마지막 판결문을 기록하여 주신 것입니다. 두 가지 사람을 발견합니다. 범사에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다니엘 같은 사람과 결코 하나님을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벨사살 같은 사람을 봅니다. 다니엘은 역사의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말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벨사살에게 경고합니다. 우리안에도 이런 벨사살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님이 내 삶을 다스리시도록 주권을 범사에 인정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진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유튜브 [박근상목사매일성경]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축복기도(Benediction)
“복의 선포”가 담임목사의 간절한 바램 보다도 더 우선한다. Benediction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의 선포” 혹은 “복의 선언”이지, 축복을 비는 기도가 아니다. 그래서 축도의 마지막 말은 “… 축원 합니다”가 아닌 “... 있을 지어다” 이다. 바울도 제사장의 복의 선포의 개념을 잘 이해한 사도 바울이었기에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한 것이다. 축도를 행하는 목회자는 아론 처럼 두 손을 높이 들고 당당히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해야 한다. 축도는 단순한 기도라기 보다 하나님이 내려주실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신학자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축도를 가리켜 "예배 안에서 일어난 일과 예배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연결 짓는 다리"라고 말했다. 축도는 예배를 마친다는 신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새로운 예배가 시작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번 한 주간 동안에도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 안에서 기뻐하며 사는 동시에,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풍성한 생명의 공간을 열어가시기를...........아멘.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