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마음을 움직이시다
에스라1:1-11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 주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자연 만물을 통해서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역사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왕들은 자기 나라와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면면히 시간 속에서 흘러 내려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긴 역사의 흐름가운데 너무 짧은 인생을 살고 있기에 때로눈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에스라의 시작은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길이 바사왕 고레스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사의 고레스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바사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해방을 선언합니다. 고레스는 소수민족의 문화와 언어와 이름을 존중해 주었던 왕이었습니다. 70년이나 할아버지 때를 지나 손자가 정착하고 있을 때에 고레스는 유대인에게 성전재건이라는 명분을 주어서 돌려 보내기로 합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예레미야의 입술을 통하여 약속하신 말씀이라고 성경은 예레미아는 불길한 말을 하는 선지자로 낙인 찍어서 많은 고난을 당했으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유대인들은 강가에서 언제 돌아갈까..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빼앗긴 들에도 정말 봄은 오는 것인가? 그들은 그렇게 노래하며 슬퍼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은 이방인의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 일을 미루고 계신 것입니다.
에스라서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6장까지는 1차 포로 귀환으로 지도자가 스룹바벨입니다. 7-10장까지는 2차 포로 귀환으로 에스라가 신앙회복 운동을 일으킵니다.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 어디든지 바벨론의 어디든지 바사 사람들과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 있든지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다 돌아가도록 놓아주라고 합니다.(2-4절) 성전을 재건을 위하여 뭐든지 필요한대로 공급해 주라는 공출(供出) 조서까지 전 바사에 내립니다. 이것은 파격적입니다.
고레스왕의 조서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70년 동안 바벨론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문화의 어느 정도 젖어 있었고 나름대로 생활 기반도 닦았지만 유다인의 반응은 적극적이었습니다. 어른들 족장들 제사장들 레위인들..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땅은 2세대의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이라는 곳에 전혀 낯선 땅이 될 수도 있지만 돌아가는 일을 적극적으로 진행합니다. 우리도 이 땅에 남아 있는 자들입니다.(4절) 이 땅의 토박이가 아니라 언제든지 주님이 돌아가라 하시면 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땅의 정치적 상황, 핵과 미사일, 안보 상황, 외교 문제들,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큽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하나님의 뜻과 선한 의지대로 모든 것을 풀어 가실 것입니다. 앞이 희미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세우시고 역사를 주관하실 것을 믿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오늘도 살아 계신 그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심을 믿고 그리고 오늘도 회복과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걷기
이스라엘의 순례자의 길은 “예수님 발자국 (Jesus Trail)이라고 한다. 나사렛에서 갈릴리 바다 옆에 있는 가버나움까지 약 65km 여정이다. 현재 지형으로 4일 동안 꾸준히 걸어야 완주할 수 있는 거리이다. 나사렛은 이스라엘 북중부에서 꽤 높이가 있는 고지이다. 그곳에서 동쪽에 있는 갈릴리 바다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수차례 이 길을 오고 가셨다. 유대인 남성으로서 1년에 세 번은 예루살렘에 오르셔야 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직선으로 내려가는 길이 최단거리로 약 386km이다. 예수님이 평생 걸어 다니신 거리를 재면 상당한 거리가 될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걷기 사역이다. 걸으시며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이 걸으셨던 하늘을 향한 영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로 걸어간다. 그것이 새 생명을 찾아 나서는 걸음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