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셨느니라
누가복음24:1-12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이 지나고 안식 후 첫 날이 되었을 때 아직 어두울 때에 여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습니다.(1절) 아직은 어둑어둑한 무덤가에 와서 누가 돌을 굴려서 무덤 문을 열어 줄까 합니다.(막16:3) 그런데 날이 밝아오면서 그들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활짝 열려진 무덤이었습니다.(2절) 두려워하고 근심하면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였습니다.(3절) 다만 시신을 싸고 있던 천들만 껍질을 벗은 듯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여인들이 시체가 없는 것을 보고 누군가에 의하여 도굴되었다고 생각하고 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마27:64절) 여인들이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고 허둥대고 있을 때에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납니다.(4절) 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했습니다.(5절) “주님은 오늘 여기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살아나셨다. 주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에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생각이 나는가?"라고 묻습니다. 주께서 몇 차래나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면 부활을 믿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맞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고 구약의 예언대로 주님 자신이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여인들은 천사의 그 말을 듣고서야 기억이 돌아오고 지워진 파일이 복구되는 것처럼 선명하게 주님의 부활의 사실로 믿어지게 됩니다. 주님이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이미 들은 말씀이 생각이 났을 때에 그 순간 모든 것이 믿어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부활의 사실을 확인하고 여자들은 이 모든 사실을 사도들에게와 모든 다른 이들에게 고했으나(10절) 여인들의 증언을 접한 사도들은 쉽게 믿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11절)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며 2천년 동안 검증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은 권리를 인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여인들은 신뢰할만한 증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때입니다. 만일 부활을 조작하려고 했다면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을 내세웠을 겁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어떤 신화적인 신비로운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는 열한 제자들 외에도 오백 명이 더 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부활은 사건이며 소식이며 복음입니다. 인간에게 알려진 최고의 좋은 소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하고 있을 당시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상당수가 살아 있었습니다. 부활의 증인을 만나는 것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들을 다시 살리실 것을 분명히 믿고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나 부활을 의심하였던 도마도 모두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성찬은 죽은 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셨으나 다시 사실 뿐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지금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날마다 부활의 생명으로 나를 새롭게 하십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더 들으실 수 있습니다.
부활의 희망의 근거이다
1세기에 유대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운동이 전염병처럼 퍼진 것은 부활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신약성경도 교회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제자들은 교리를 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소식 곧 뉴스를 전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은 주저앉지 않는다. 전염으로 인하여 죽음의 안개가 사람들의 마음을 누르고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이때에 다시 부활을 말해야 한다. 부활의 희망으로 이 절망을 이겨야 한다. 전염병과 정치적인 입장 차이로 갈라진 교계가 부활의 신앙으로 하나 되어야 하고 다시 부흥이 되어야 한다. 지역마다 부활절 연합예배가 드려져야 하고 부활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이유는 부활의 복음 때문이며 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부활 때문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