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왕이 없었으므로
사사기21:16-25
이스라엘의 내전이 끝나고 베냐민 지파에는 600명의 남자만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는 남자들에게 여자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전쟁에 참여하지 아니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쳐서 남자들을 다 죽이고 여자들 400명을 데려다가 베냐민 지파에게 줍니다. 미친 세상입니다. 더 빼앗아 올 여자도 없자 해마다 실로에서 절기를 지킬 때에 처녀들이 포도원으로 나와서 춤을 추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처녀들을 납치해서 베냐민의 대를 잇게 하자는 것이 이스라엘 장로들이 짜낸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도 하는 것이 아니라 베냐민 자손에게 그렇게 하라고 제안을 합니다. 베냐민이 여자들을 납치하는 것은 허락합니다. 야베스 길르앗 사람이 죽임을 당했고, 실로의 처녀들은 납치를 당하여 원치 않는 결혼을 하여야만 했습니다. 이런 중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참 기가막힌 일입니다.
교회에서 앞장 서 일하는 분들이 섬길 때에 교회를 마치 기업을 하듯이 사람의 집단을 움직이듯이 세상의 논리를 가지고 이끌어 간다면 겉은 교회일 수 있으나 교회가 아닐 수 있습니다. 뜻도 거룩하면 방법도 거룩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헌금을 더 모으기 위하여, 사람을 더 모으기 위해서 정상적인 아닌 방법을 중직자들이 목회자에게 제안을 하고 목회자는 거기에 무릎을 꿇어 교회를 이끌어 간다면 사람의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통해서 발견한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성경적인 원리를 따라 그 일을 이루어갈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에서도 빛이 나고 맛이 납니다.
베냐민의 자손들을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가르쳐 준 대로 여자들을 데려갔습니다.(16절) 베냐민의 자손들이 다 여자를 얻게 된 것을 보고서야 이스라엘 자손들도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24절) 그렇게 모든 상황이 일단락 됐습니다. 전에 있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돌아가서 전에 하던 대로 하던 일을 뒤풀이 했습니다. 같은 동족끼리 전쟁을 치루면서 한 가지도 배운 바가 없습니다. 가서 또 자기가 기준이 되어 자신이 하던 대로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한다지만, 장래 방향이나 일을 행할 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하여 버릴 때가 많습니다.
사사기는 “그때에” 여전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노래의 후렴처럼 처음도 끝도 ”왕이 없음“으로 끝이 납니다. 400년 동안의 혼란은 “왕이 없음‘입니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고 제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다스림을 받는냐에 따라서 인생이 반듯하게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주님이 왕이 되시면 죄가 내 안에서 활동 하지 못합니다. 그 분이 나를 다스리시고 그 분의 뜻이 내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메시지를 자신의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내가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읽어 내고, 해석하고 파헤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이 고백이 사실이라면 그 분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삶으로 증명해야만 합니다. “왕으로 왕 되게 하라” 그분의 “주권을 모든 삶의 인정을 하라” 그래야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왕이신 나의 나의 하나님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 하리이다 아멘
이 찬양을 주님께 드리면서 사사기를 끝맺습니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