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리자이신 하나님
사사기20:35-48
이 시대는 쾌락과 폭력의 시대입니다. 쾌락이 있는 곳에 폭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동성연애가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이것을 합법화 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온통 핏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대체 몇 명을 죽였는지 수도 알 길이 없습니다. 이제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소중한 존재이기에 사람은 가치가 있습니다. 노리개 거리가 아닙니다. 사람은 상품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레위 지파 사람의 첩의 죽음에 대하여 폭력으로 응징하기로 결정하고 베냐민과 전쟁을 일으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상황이 그랬으니까. 남도 그렇게 하니까. 다른 사람이 허물을 대해서는 칼날과 같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것은 몇 배를 갚으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베냐민 지파에 대해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접근을 했다면 베냐민 사람들도 돌이켰을 것입니다. 40만 명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미스바에 모여 놓고 그리고 베냐민을 겁박합니다. 그들에게 죄인을 내어주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답이 뻔합니다. 그러니 자기의 동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베냐민을 약한 지파이지만 불가불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베냐민과 세 번째 접전이 있었습니다. 칼을 쓸줄 아는 베냐민 사람들 25,000명의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도 4만 명이 죽습니다. 이제는 누가 지고 이기는 싸움이 아닙니다. 내가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싸움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유인하여 성에서 나오게 하여 지어 있는 성에 불을 지릅니다. 퇴로가 막힌 베냐민 군대는 퇴로가 차단되자 들로 도망을 치다가 18,000명이 죽습니다. 광야 쪽으로 도망하던 다들이 5000명을 죽습니다. 더 추격해 가지고 이삭 줍듯이 2,000명을 더 죽입니다. 이 싸움으로 베냐민은 더 이상 싸울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작은 누룩이 부풀어 올라서 이스라엘의 지파나 베냐민 지파나 다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처럼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다가 온 밭을 다 뒤집어 놓은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에 이 전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숫자가 40만 명이기 때문에 밀어붙이면 대충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다 죽고 남자 600명만 살아남습니다. 천명 정도가 실종이 됩니다. 출애굽 이후에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 45,600명이었던 베냐민이 다 죽고 600만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도 4만 명을 잃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기브아에 있는 불량배들로 죄가 내전으로 이어지고 엄청난 파괴와 상처를 경험합니다. 죄는 작게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끔찍한 파괴를 가져옵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가까운 사람도 있고 먼 사람도 있고 우호적인 사람도 있고 적대적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이든지 그를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기는 마음을 잃지 않을 때에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차별을 금지하는 것?
동성애나 동성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일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대로 설교할 경우 법의 제재를 받기 때문에 교회와 설교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이단 사이비 종교를 비판하거나 교인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으며 그런 자들이 교회안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여도 막을 길이 없어진다. 결국에 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며 복음만이 유일한 생명의 진리라고 설교하는 것은 다른 종교를 차별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위법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이것은 결코 기우(杞憂)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막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