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권력자의 종말
다니엘11:36-45
북방왕은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4세입니다. 그는 힘이 점점 강해지자 자기가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를 합니다. 그는 자신은 모든 신보다 뛰어나다고 자처합니다. 안티오커스 4세는 이름 뒤에 에피파네스는 호칭을 더합니다. 에피파네스((Ephipanes)는 ‘나타난 신’을 의미합니다. 그는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인간은 본래 쉽게 교만에 빠지는데 존재입니다. 끝을 모르고 교만은 치솟아 오르다가 추락합니다. 그렇기에 교만이 내안에서 싹트지 않도록 늘 돌아 봐야 합니다. 암세포는 작을지라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면 자라날 것이고 자라나면 결국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들이 있다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대처를 해야 합니다. 안티오커스 4세는 결국 교만에 빠져서 그 자신은 마지막 날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좋은 모델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지막 심판을 받는 적그리스도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그 대신에 강한 신을 공경할 것이요”(38절) 강하고 교만한 사람도 자기보다 더 강한 신을 원합니다. 자신에게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을 신처럼 떠받듭니다. 뭔가를 의지하고 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의지하지 않고 큰 소리 치고 싶어 합니다. 인간은 뭔가에 붙들려 있습니다. 조금만 자기에게 힘이 될 것만 있어도 그것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보험도 신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보험을 위해서 부모를 버립니다. 힘없는 부모 보다는 보험이 더 힘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인간은 지금도 강함 신을 찾아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질을 주고 명예를 주어서 결국 자기 사람을 만듭니다.(38-39절) 돈을 가지고 보상하여 주고 사람을 조종합니다.
안티오커스 4세는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36-45절까지는 문자에 나타나는 어휘대로 해석하지 아니하고 적그리스도의 활동으로 보아야합니다. 북방왕이나 남방왕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끼리 전쟁으로 보아야 합니다. 강대국은 강자로 군림하기 위하여 강자끼리 충돌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은 세계를 정복하고 그리고 복종을 강요합니다. 그 힘이 너무나 강하여서 누구도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반항이라도 한다면 무자비하게 진압해 버립니다. “그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을 것이다”(45절) 결국 하나님이 작정하신 끝이 오면 결국은 그것은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다니엘에 대한 이상에 대한 이 해석이 100% 동의할 수는 없을지라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운 역사의 마지막 날에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강한 세력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건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지.. 어디에 줄을 대고 ..어디를 의지해야 내가 살아남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천박하고 깊이 없는 예배나 또 적당한 교회 생활을 하려고 하지 말고 그 어느 때보다도 근신하고 깨어서 단단히 무장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올 것입니다. 누구도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45절)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결국은 멸망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종말이 올 때 우리의 구원의 약속은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깨달음
다니엘서에는 유난히도 깨닫는 말이 자주 나온다. 다니엘은 주의 진리를 깨닫기를 원했다.(9:13) 천사는 다니엘에게 “깨달아 알라’” 말했고(8:17), “그 천사가 다시 나타나 그에게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9:23)고 말하면서 환상에 대한 해석을 이야기해 주었다. 다니엘서는 우리에게 읽음을 너머 깨달음을 촉구한다. ‘깨달음’이라는 말은 타종교나 이단에서 쓰는 말로 오해 받을 수 있지만 성경은 깨달음을 강조한다. 믿음이 성숙해지는 것은 깨달음에 의한 것이다. 믿음만 있는 신자는 어린아이이다. 믿음에 깨달음이 더 할 때에 성숙해진다. 믿음 없는 깨달음은 철학에 불과하고, 깨달음 없는 믿음은 천박한 이기심에 불과하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믿음의 이름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깨달음이 없어서이다. 미술 기법 중에 모자이크 기법이 있다. 여러 가지 색의 돌이나 유리, 혹은 도자기 조각들을 사용해서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기법이다. 다니엘서는 세상을 모자이크로 표현하다. 작은 파편 하나하나를 연결해보면 구속사라는 거대한 그림이 드러난다. 눈앞에 보이는 사건이나 개인의 삶에 몰두 하다보면 역사를 하나님의 거대한 손길을 놓칠 수 있다. 다니엘서를 통하여 깊은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