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욥기42:7-9
글로 다 담을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유튜브에 꼭 들어 가셔서 오늘의 말씀을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욥은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욥이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합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욥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면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하십니다. 우리를 도구로 삼아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들을 옳게 붙잡아 주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욥을 가르치고 깨우치려고 한 것에 대하여 옳다고 칭찬하지 않으시는지 마음이 불안하였습니다.
이때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함이니라"(7절) 친구들은 옳은 말, 정당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옳지 않는 말을 하였다고하십니다. 아무리 옳은 말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옳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욥에게 쏟아 부었던 모든 비난을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분노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분노하신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만을 내세웠을 뿐 하나님의 자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논리에 하나님을 가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는 자,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조언을 하는 자는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들의 영적인 회복을 위하여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번제로 드리게 하십니다.(8절) 특이한 것은 번제와 더불어 그들을 위한 욥의 기도가 동시에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모욕했고 욥은 친구들의 말을 계속 듣고 있느니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에게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이라고 하십니다. 피해를 입은 자가 자기에게 해를 입은 자를 위하여 오히려 기도하면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7-8절을 보면 하나님이 욥에게 "내 종"이라는 호칭을 네 번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인정하여 주심에 욥은 마음이 다 녹아 내릴 정도로 흡족하였을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번제를 드리며 욥이 자기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욥이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시오”라고 요청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기도를 부탁하였을 때에 흔쾌히 그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욥은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그렇게 기도하는 욥도 받으셨습니다. 사랑하고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핍박하고 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감정이나 의지로는 힘든 일이지만 개인적인 관계를 뛰어 넘어 기도하게 됩니다.
욥도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였고(6절)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성경에서 우리를 매우 감격하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기도를 들으시고 욥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제는 욥도 용서를 받고 3친구들도 용서를 받고 다함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욥도 회복되고 친구들도 회복되었습니다.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더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기도는 사랑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조급한 마음에서 스스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할 때가 많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묶어서 쓸 수는 없는 법, 어떤 문제가 생기든지 우리는 기도부터 함으로써 그 문제를 먼저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중보기도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견해이다. 중보기도란, ‘다른 사람의 사정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문제를 다루어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눈앞의 문제가 당장 해결되기를 바라면 안 된다. 오히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고난을 겪으면서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음성에 무릎을 꿇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중보기도는 영적인 노역(勞役)으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중보기도는 최고의 이웃사랑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