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입니다
출애굽기16:21-36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만나는 아침에 해가 뜨기 전 이슬이 마를 때부터 해가 뜨기까지 잠깐 내려 왔다가 아이스크림이 녹아 버리듯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만나는 짧은 시간 동안에 거두어야 합니다. 늦잠 자든지 게을러서 만나를 거두지 못했다면 하루 종일 굶어야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하기 전까지 바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지지 못하면 종일 영적으로 굶주려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된 하루는 쉽게 유혹에 노출됩니다. 여러분의 아침 시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해가 뜨기 전에 영적인 만나를 먼저 섭취하십시오.
6일 동안 만나를 거둔 다음에 마지막 7일이 되기 전에 6일은 이틀 것을 거두어도 냄새가 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이벤트이며 배려입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은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16장은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주신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노예살이 할 때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내내 일해야 하고 일하지 않으면 매를 맞고 굶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뼛속 깊이 남아 있는 노예 근성이 남아 있어서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그래서 쉬지 못합니다. 쉰다는 것은 복입니다. 군대에서 고된 훈련을 받다가 10분간 휴식이 얼마나 좋은지 또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쉰다고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며 하나님의 복입니다.
안식일은 육의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날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먹는 날입니다. 나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에 유익을 끼치는 날입니다. 특별히 이틀 분량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을 어기는 일이 있었습니다.(28절) 한 사람이 예배자가 되어 예배의 날을 거룩히 구별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안식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규칙을 어기는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오히려 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합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하루를 쉬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가장 닮은 인간에게 함께 쉬자고 하신 날입니다. 인간이 우리를 극치의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를 것입니다.
만나는 깟씨와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고 합니다.(31절) ‘깟’은 지중해 연안에 1년생 미나리과에 속한 식물입니다. 50cm에서 1미터정도 자라납니다. 순이 어렸을 때는 잘라서 먹기도 하고 또 씨앗은 향신료로 쓰기도 합니다. 깟씨는 작은 콩알 크기입니다. 맛은 꿀섞는 과자와 같았습니다. 말씀은 꿀 송이와 같이 답니다.(시119편 103절, 10절, 103절) 만나는 광야에서 반찬도 아니고 향신료도 아니고 간식도 아니었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가 먹는 밥처럼 주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식이 아니고 간식처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신앙서적을 읽고 기독교 영화를 보아도 말씀을 덮고 사는 사람은 건강할 수 없습니다. 매일 마다 아침마다 만나를 진 밖에 나가서 거두듯 하나님의 말씀을 꼭 먹어야 합니다. 거룩한 습관을 익혀서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만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매일매일 승리하고 충만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 들어오셔서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일요일과 주일
기독교인이 주 대상인 방송프로그램에서는 '주일'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서는 주일이라는 말을 쓴다면 불편해 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입에 올리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는 말이 사실은 불교용어이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어떤 단어가 어떤 종교적 색채를 가졌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면 별 이상이 없다.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유대인들은 일곱 번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이라고 해서 쉬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믿는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이 날이 진정한 안식일이라고 해서 주님의 날, 주일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에 주일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일요일은 곧 주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 풀꽃 하나에서 계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듯이 작은 빛이 모여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다. 종교 용어와 일상 용어가 일치 되려면 입으로 고백한 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야 한다. 예수님은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셨으나 그분의 말씀은 진리였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