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찬양하라
출애굽기15:13-215
죽음의 수렁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을 경험한 사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목격한 사람은 찬송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찬송은 의무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고 있는 영적 본능입니다. 찬송 하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찬송 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사42:8. 43:21)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13절)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이다”(1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이유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나안에서 영원힌 잘 먹고 잘 사는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심으시고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 하시려고 애굽에서 뽑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 뿌리를 내렸으니 얼마를 깊이 뿌리를 내렸겠습니까? 직업이 노예가 되어 버렸고 바로도 이스라엘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거기에서 실뿌리 하나 끊어지지 아니하고 그대로 뽑아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에서 뽑으시고 하나님의 교회에 심어 주셨습니다. 교회란 세상에서 불러냈다는 의미입니다. 불러낸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잘 훈련을 받고 여기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점점 자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뽑으시고 심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을 우르에서 뽑으시더니 가나안 땅에 심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애굽에서 뽑으시더니 가나안 땅에 심으셨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고 그곳에서 예배를 받으시고 그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것인가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벹전 2장 9절에 보면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심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덕을 드러내고 선전하고자 하십니다.(벧2:9)
광야에 저 사막에는 암몬, 에돔, 모암이 영웅과 두령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 나라들이 하나님의 권능과 이적과 보호하심을 들고 입을 다물고 조용해집니다.(15.16절)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머리 끝 하나 상하지 않고 그곳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지나간다는 소식만 들어도 주변에 있는 나라들은 떨며 낙담하며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감히 손을 대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교회, 하나님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권세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했”다고 합니다.(행2:43) 그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권세였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비슷해지면 교회는 추해집니다. 초라해집니다.
홍해를 건너고 나서 곧바로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이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면서 찬양합니다. 많은 여자들이 미리암을 따라서 무리를 지어서 함께 찬송합니다. 내가 부르는 찬송이 다른 사람을 찬송의 자리로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찬송하는 것보다 무리를 지어 찬송을 때 힘이 있습니다. 찬송의 소리가 커지고 찬송의 영역이 넓어지고 어둠의 세력이 물러갑니다. 하나님이 크게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주님을 찬양하라고 여기에 세워 주신 것입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 들어오셔서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참 아름다워라
나는 수년전에 대전 한남대학교 기독교학부에서 ‘기독교 문화’를 몇 년을 강의한 적이 있다. 강의 시작하기 전에 늘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찬송 1절을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오늘 학교에 오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사물이든, 사건이든, 신문기사이든, 사람들이든지 관찰한 것을 묻고 어떤 영적 교훈을 받았는지를 발표하게 했다. 관찰의 힘을 기르는 훈련이었다. 시인으로, 장로교 목사인 벱콕 목사(1858-1901)가 뉴욕의 락포트(Lockport)에서 목회할 때, 매일 아침 가까운 산의 숲속을 산책하였다. 그는 가족에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가 지으신 세계를 보러 나간다”(I’m going out to see My Father’s world.) 벱콕 목사가 죽은 후에 부인이 그의 시를 발견하여 발표한 찬송이다. ‘참 아름다워라“ 이 첫마디에 ’참‘이라는 감탄사를 넣어서 번역한 것은 파격적이다. 나는 지금도 아침에 자주 이 찬송은 음미한다.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 하나님을 묵상한다. 먼저 가사를 조용히 읽으시고 찬양을 불러보자.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