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뒤 아내는 서울 이화동에 있는 청산여상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던 아내는 교직생활에 열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쁜 소식을 듣게 됐다.
“우리에게 아기가 생겼어요”
이 말은 온 가족에게 큰 기쁨이며 힘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아이를 생각하며 이겨냈다. 그러나 꿈같은 시간도 잠시였다. 아내가 배를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아내는 그러나 통증 때문에 더 괴로워했다.
아내는 몸이 약해 주말이면 산부인과 의사였던 이모부의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아가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갈수록 아내의 통증이 심해지자 이모부는 종합진찰을 해보자고 권했다.
결과가 나오는 날 뜻밖의 소식에 모두 당황했다. “맹장에 문제가 있어요. 하루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산모와 태아 모두가 위험해”
당시 아내는 임신 3개월이었다. 단순히 맹장수술만 하는 게 아니었다. 먼저 임신중절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했다. 수술할 때 사용하는 강한 마취제와 항생제 등 약물이 태 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어쩌면 장애아가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난감하고 기가
막혔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친구,동역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아내는 다른 여선생님들로부터 임신중 감기약을 먹고 비정상아가 태어났다느니,임신중 부주의로 인한 별별 사례를 듣고 무척 힘들어했다.
나 역시 다른 선배 목사님과 교수님들에게 상담했지만 모두 임신중절을 하라는 답변만 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확고했다.
“하나님이 주신 첫 아이인데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중절수술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죽이는 살인행위예요. 저는 하나님께서 선한 방법으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줄 믿어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요”
특별 작정금식기도에 들어갔다. 아내는 더 이상 학교생활을 하는 게 힘들어 병가를 내고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의 유명한 산부인과는 모두 찾아다녔다. 그러나 의사들은 한결같이 임신중절을 한 뒤 맹장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직 젊어서 앞으로 임신할 기회가 많은데 무엇 때문에 주저하느냐”며 빨리 수술할 것을 재촉했다.
우리는 큰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산부인과 한 곳을 더 가보기로 했다. 부산의 청십자병원이었다. 그 날 아내를 진료한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인이었다. 아내는 검사를 받기 전 먼저 선생님에게 그동안의 사정을 이야기한 뒤 “절대 태중의 아이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고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그 선생님은 “잠깐 기다려보세요”라며 긴 상념에 빠졌다. “수술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기도하면서 수술을 해봅시다. 수술은 제가 하겠습니다”
당시 여동생이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던 부산 아동병원에서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이 직접 수술을 맡겠다며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그날 저녁 아내와 함께 기도했다. “하나님,우리를 이 병원으로 인도하시고 독실한 신앙인이신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신 것은 특별한 뜻이 있는 줄 압니다. 도와주세요”
아내와 오랜만에 깊은 잠에 푹 빠져들었다.
정리=노희경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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