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세기13:13-1-18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2년 8월 25일 오전 08:00
- e 846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세기13:13-1-18
아브라함이 양식을 얻으러 애굽에 갔다가 아내를 잃을 뻔 했던 끔찍한 일을 당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나안 남쪽인 네게브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김질 하고 마음을 굳게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때 쯤 아브라함에게 재산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소도 생기고, 양도 생기고 나귀도 낙타도 생겼습니다. 금과 은도도 많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만 그런 것이 아니라 롯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축의 숫자가 늘어나고 목초지가 더 필요하다 보니 목자들 간에 다툼이 생깁니다. 아마도 격렬한 다툼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거기다가 토박이인 가나안, 브리스 사람들과 충돌 가능성도 점점 높아집니다.
아브라함은 나이로나, 촌수로나, 재산으로나, 지위에서 롯보다 윗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화목을 유지하기 위하여 먼저 제안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을 그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양보하였습니다. 화목을 유지하는 방법은 한 쪽이 양보하고 희생하고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선택하게 합니다. 이런 제안을 했을 때 누가 가장 힘들었을까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가장 힘들었을 겁니다. 아내 사라가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역사가 성경에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롬 12:10) 주님의 말씀입니다.
롯이 떠나면 두 노인만 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기 때문에 여차하면 조카 롯을 후손을 대신할 자로 세울 수도 있습니다. 롯을 미래를 위한 보험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겠으나 다 내려놓고 떠나보내고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만약 롯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겠다는 결정한다면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땅을 내어 주고 다른 곳으로 가야할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자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차질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롯이 둘러보니 좋은 땅에 들어왔습니다. 롯은 거침없이 보기에 좋은 땅으로 가겠다고 결정합니다. 롯이 본 것은 강물을 끼고 있는 요단 지역의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본 자가 아닙니다.
롯이 떠난 다음에 아브라함은 혼자 서 있습니다. 그의 앞에 보인 것은 황량한 광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이제 바라보라”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보는 것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그 비전을 따라가는 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종으로 횡으로 다녀보라고 하십니다.(17절)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보고만 있지 말고 실제로 다녀 보라고 하십니다.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라고 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녀 보았을 것입니다. 다 다 말씀하십니다. “네가 바라본 그 땅, 네가 발로 밟은 그 땅을 내가 너에게 주리라. 네가 본만큼 주리라. 믿음으로 땅을 밟은 만큼 주리라” 감람나무 숲과 포도원, 곡식이 물결치는 들판, 그리고 작은 산들을 둘러싼 넓은 방목지가 있는 고원지대에 거주하면서 그는 단순한 족장 생활에 크게 만족했으며, 롯이 차지한 소돔 골짜기의 위험스런 사치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오늘도 황량한 광야 같은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발걸음을 내딛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선취특권(先取特權)
“1962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했다. 기숙사를 배정받고 방을 찾아갔는데 방에는 '얼'( (Earl Lackey)이라는 친구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미 소지품을 정리를 마친 얼은 자기 이불을 침대 이층에 올려놓았다. 자세히 보니 불편하고 불리한 곳을 얼이 모두 선점해 버렸다. 나는 좋은 곳을 똑같이 나누어 쓰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먼저 온 자기에게 '선취특권'이 있다며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사이좋은 룸메이트(roommate)로 소문이 났다. 얼은 학교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었고, 은퇴할 때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변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배려의 의미를 알 수 있었을까? 남을 배려하는 힘도 전염성이 있는 것 같다.” (손봉호 교수의 글)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