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답기 위하여
고린도전서11:1-16
고린도교에서 여자가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은 종교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 아니고 단정함의 표시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머리에 너울을 쓰고 품위 있는 복장을 하고 예배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일부 교인들은 바울이 전해 준 신앙적 전통들을 거부했지만 대다수의 교인들은 그런 전통들을 잘 지켰습니다. 이것은 주님 오실 때가지 지켜야 하는 일관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은 교회가 지키는 전통을 따르며 순종하려고 애쓰는 교인들의 모습을 귀하게 여기고 칭찬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여자는 교회에서 기도할 때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 모든 교회의 일치된 의견이었습니다.(16절)
당시에 여자가 공공 장소에서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는 것도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상류층여성들은 머리에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을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름다운 치장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머리에 너울을 쓰라고 하니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종교적인 상징물로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단정한 옷차림으로 예배에 참여하라는 말입니다. 신자는 사소한 예절까지도 지키고, 품위 있고, 고상하고, 수준이 있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예배에 새 바람이 불고 있으며 예배의 참 정신이 깨어지고 흔들리는 느낌이 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느껴지는 경건한 예배를 드림으로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는 구절을 주의해야 합니다.(3절 후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피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머리’는 권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권위는 반드시 한 쪽은 우월하고 다른 쪽은 열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은 우월하고 그리스도는 열등하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도 동등한 위격(位格)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위는 질서의 문제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가치 면에서 동등합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남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일컬어 우리를 돕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성령님도 우리를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볼 때 ‘돕는다’는 말에는 차별적인 요소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복종하고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성은 여성답고 남성은 남성다우면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찬양인도자가 민망한 런닝 차림으로 나와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복장의 문제는 본질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학적인 논쟁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세례나 세례와 같이 형식적인 차이가 있을지라도 본질은 같은 것을 인정하며 예배하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교회는 본질과 형식을 함께 간직하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본질에 변하지 않는 예배의 원칙은 최고의 권위이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형식이 어떠하든지 그 사람의 마음이 새롭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언제나 새로운 최고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 스타일의 문제
교회가 예배 스타일의 변화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성가대도 없애고, 순서도 깨버리고, 설교자가 넥타이 풀고 설교하다가 나중에서 아닌가 싶어서 성가대도 다시 세우고 넥타이를 다시 맺더니 교인이 다 떠나가더란다. 예배의 본질에 금이 갈 정도로 문화를 반영한 예배를 시도하고 있는 현상들도 있다. 다양한 변화의 시도를 하고 있다. 어느 것이 옳으냐, 어느 것이 틀리느냐 하는 답은 없다. 예배의 정신을 지키면서도 문화를 반영하는 예배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배하는 대상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배가 깨어지면 결국은 교회도 깨어진다.
-오늘아침- ■유튜브[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