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피 남편입니다.
출애굽기4:24-31
모세는 가족을 이끌고 애굽의 고센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의 왕을 만나러 출발합니다. 다섯 번이나 갈 수 없다고 버티던 모세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모세가 언제 변심하여 다시 돌아간다고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달래가면서 모든 것을 다 제공해 주고 길도 잘 열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모세가 애굽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숙소에 찾아오셔서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모세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켰거나 졸도를 하였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곧 죽을지도 모르는 긴급한 상황을 만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야 할 자요,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해주어야 하는 자입니다. 만일 그의 가족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는 아마도 할례 제도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도 모세도 십보라에게 한두 번 “할례를 합시다” 라고 했지만 십보라의 반대에 부딪히자 포기하고 아내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를 인질로 삼아 십보라를 위협하신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아들에게 할례를 베풉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할례의 아픔이 크다 한들 사람 죽는 것보다야 작지 않는가? 모세는 아파 누워 있으니 당연히 할 수 없으니 십보라는 떠밀려서 아들에게 할례를 시행합니다. “십보라가 차돌을 취해 그의 아들의 표피를 베어 (Cut off her son's foreskin)”라고 단수(한 아들)로 되어 있습니다.(25절) 모세가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기에 “이제 당신은 피로 산 남편”이라고 이름을 붙여 줍니다. 이 일로 십보라는 남편에게서 말로만 전해 듣던 여호와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할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헌신된 일꾼으로서 작은 것 같은 문제를 해결 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쓰실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이 주신 명령에 대하여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할 때에 큰 문제를 겪을 수도 있으며 사역의 열매가 맺지 않습니다.
오래토록 떨어져 있었던 형 아론이 모세를 만나기 위해서 고센을 떠나서 광야로 나오게 됩니다. 모세는 아론을 만나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지 자신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얘기합니다. 지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비전을 함께 공유할 사람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비전을 나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함께 사명을 공유하고 함께 목표를 갖고 한 방향을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함께 장로들과 백성들에게 설명합니다. 온 이스라엘과 장로들이 모세에 대하여 청문회를 하거나 40년 동안의 행적에 대해서 묻지 않았습니다. 그를 하나님이 부르셨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지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모세를 따르기로 합니다.
이스라엘이 고난당하는 현장에 하나님은 이미 방문하시고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보냈다는 것을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이 인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경배를 돌립니다. 모세가 아무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지라도 백성들이 인정해 주지 않고 또 장로들이 믿어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도자들 인정해주는 회중이 있고 그 회중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가 행복한 교회입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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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라
기본 전제가 잘못되었다면 그 뒤에 따르는 모든 결론 또한 잘못 된다. '1+1=3'이라는 전제로 덧셈을 한다면 이후의 모든 계산은 틀리게 될 것이다. 똑같은 사건이지만 어떤 태도를 전제로 하느냐에 따라 감정과 말, 행동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태양이 있는 곳에는 항상 그림자는 있다. 하루에 밤과 낮이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의 마음에도 낮과 어둠이 존재한다. 같은 일에도 항상 부정과 긍정은 동시에 존재한다. 문제만 보는 사람에게는 문제만 보이고 해답을 보는 사람에게는 해답이 보인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의 눈엔 수많은 하나님의 부재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무수히 많은 존재의 이유를 삶의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의기소침하여 쓰레기통만 뒤지며 포기해야할 이유만 강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아침-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