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팡이를 잡다
출애굽기4:18-23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것이 순교라 할지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하게 하십니다. 주의 일이 만만하지 않으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부족하지 않게 스스로가 만족하며 감당했다고 합니다.
모세가 애굽의 동족과 바로에게 가기 전에 장인인 이드로에게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나는 간다”라고 통보하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갈 곳이 없을 때 오래도록 그를 품어준 장인 이드로에게 예절을 갖추어서 인사를 하고 허락을 받고 그 집을 떠납니다.(18절) 처가 살이 40년에 그 집을 나올 때 양떼를 물려준 것도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섭섭할 수도 있으나 모세는 예절을 지키고 인사를 하고 또 이해 되도록 충분히 설명합니다. 이드로가 모세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 주어서 그 집을 떠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드로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모세의 장자방(張子房)이 되어서 명이 되어서 백부장 천부장을 세우는 지혜를 제공을 해주고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작은 습관이 같지만 인사를 잘하고 예절을 지키고 질서를 아는 태도가 그의 삶을 결국은 복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족들을 나귀에 태우고 지팡이를 손을 잡고 애굽으로 떠납니다. 그 장면에서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20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계(十誡)라는 영화에서 모세는 긴 수염을 휘날리며 키보다 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영화에서 본 지팡이는 크고 그럴듯하지만 그가 40년 동안 양을 치며 닳고 닳아서 길가 버려도 주어 가지도 않을 평범한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무를 깎아 만들어 준 것도 아니고 본래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20절) 한 마디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팡이를 손에 붙들어 사용하십니다. 연약한 우리, 미련한 우리, 가난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쓰심을 이 세상에 보여주십니다.(고전1장) 나로 하여금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할 것이 없게 만드시고 나를 써나가십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는 요술지팡이가 아닙니다. 그 자체에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지팡입니다. 모세는 지팡이를 볼 때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지팡이를 가지고 기적을 행하라” “이 지팡이를 가지고 네 백성을 구원하여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되새기고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바로의 손에는 있는 칼에 지팡이는 두 쪽이 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지팡이기 때문에 바로가 결국은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한없이 많지만 하나님의 붙드시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바로 왕이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바로왕의 완악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됩니다. 바로는 태양의 아들을 자처했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감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손대지 못합니다. 결국은 이스라엘을 놓아줍나더.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충분히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설득 하는 것처럼 우리를 설득하시고 우리를 쓰고 계십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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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막대기 같은 나일지라도
나는 1990대 초에 사랑의 교회의 옥한흠 목사님에게 제자 훈련을 받았다. 어느날 과제물에 나는 이렇게 질문을 적었다. “목사님 제자 훈련도 받고 개인적으로 큐티를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설교하면 좋을까요?” 옥목사님이 빨간 펜으로 이렇게 적어 주셨다. “온 교인이 다 훈련을 받고 큐티를 하고 있을지라도 큐티로 예배와 설교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더 탁월해야 한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본문중심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다. 지금도 그 조언을 잊지 않고 있다. 옥목사님은 설교 강단에 서실 때마다 “마른 막대기 같은 나를 주의 옷자락 뒤에 감추어 주시고 말씀만 증거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새벽이나 주일이나 강단에 설 때마다 늘 “마른 막대기 같은 나를 ...” 이 기도를 하고 있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