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여 제발!
출애굽기4:1-18
모세가 40년 전에 바로 공주의 양 아들이라는 사실을 히브리인도 바로도 모릅니다. 그저 광야에서 이름 없는 목동으로 40년을 살았던 노인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모습으로 어찌 백성의 지도다가 될 것이며 제국의 왕인 바로에게 나가서 협상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모세가 할 수 있는 말은 “오 주여 제발”(10.12절) 이 말 밖에는 없었습니다. 400년 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십니다. 양도 장인의 양이요. 가지고 있는 것은 수십년 동안 가지고 다니던 목동의 지팡이 하나뿐입니다. 몸에 지니고 다니던 익숙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으십니다. “나에게 쓰임 받으려면 어디 가서 불 받아 가지고 오라. 박사 학위 하나 따 가지고 오라. 많은 경험을 쌓고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10장에 제자들을 전도 내보내시면서 두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고 신도 두 개를 가지고 가지 말고 돈이 가득한 지갑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쓰시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한 이대로 받으셔서 크신 손으로 나를 붙들어 쓰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땅에 내어 던지라”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질겁하여 뱀을 피하고자 합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라” 말씀 순종하여 당당하게 뱀의 꼬리를 잡으니 지팡이가 됩니다.(3.4절) 주를 위하여 살아갈 때에 직면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고 당당하게 합니다. 그게 의사입니다. 100% 못 고친다 할지라도 적어도 수술 할 때 환자를 대할 때는 그런 자세로 대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영적인 전문가입니다. 눈앞에서 한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천당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합니다. 목사인 저도 천당 갔다 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그를 향하여 내가 가보지 않은 천당에 대해서 분명히 선포해야 합니다. “당신은 천국 갑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주님 품에 안기시라고 담대하게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적을 보여주셨으나 계속해서 핑계하기를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10절) 정말 모세가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 있을까요? 행7장 22절의 스데반의 설교중에 모세는 그 말과 행사가 다 능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수사학과 웅변술도 배웠습니다. 그는 뛰어난 웅변가나 달변은 아닐지라도 자기 소신을 조리 있게 말할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중에 보면 언어로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들이 많습니다. 정치가들은 유창한 말솜씨를 가지고 싶어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말의 기술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복음의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평소에는 무식하고 말을 더듬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조금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의 말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있게 논리적으로 권세 있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유창한 웅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 말 잘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은 잘 하는데 말씀은 못 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함으로 마른 막대기 같은 날지라도 귀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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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둘러라
나는 카카오톡의 첫 화면에 “천천히 그러나 쉬지 말고”라고 써 놓았다.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는 말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이라고 한다.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종식시킨 아우구스투스는 아예 이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고 천천히 하다보면 서두를 수 없다.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지만 역설적 의미를 갖고 있다. 서두르지만 마음으로는 전후좌우를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말이다. 멈출 시기를 아는 결단과 천천히 서두르는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다. `천천히 서둘러라`는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서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말이다. 어슬렁거리면서 여유를 즐기되 다음 할 일을 구상하면서 기회가 다가오면 머뭇거림 없이 앞으로 달려 나아가는 치열함을 간직하라는 말이다. 마음은 여유롭게 그러나 행동은 그러나 주도면밀하게 사는 하루가 되시기를.......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