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 궁에서 미디안 학교로 가다
출애굽기2:17-25
어느 날 모세가 자기 민족이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마음에 깊은 고민을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설교 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 40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을 돌아볼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행7:23) 모세는 순간적인 감정으로 애굽 사람을 죽인 일로 인하여 궁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순간의 감정이나 인간의 열심히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영적인 지식 결여 되어 있고 지혜가 없는 열심은 무모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히브리 동족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서로 위로하고 살아도 시원찮을 판인데 이게 뭐 하는 일이냐고 합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얼마 전에는 애굽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가라고 말하여 애굽 사람을 죽이는 것을 폭로합니다. 모세는 중재자로서 권위를 상실하고 그 일로 말미암아 망명의 길을 선택합니다. 히11장 24절 25절 26절에 보면 또 다른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모세가 궁에서 나왔던 것은 바로가 두려워서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미디안 학교에 입학 시키십니다.
모세는 동족에게 돌어갈 수도 없었고 애굽으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나그네가 되어 도망친 곳이 시내반도 북쪽에 있는 미디안 광야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장차 장인이 될 이드로와 그의 딸들을 만납니다. 모세가 미디안에 도착했을 때 다른 목동들에게 밀려서 자신이 양떼를 물도 먹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건달들이 양치는 소녀들을 괴롭힌 것입니다. 모세는 그 목동들을 쫓아내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다른 사람의 불화에 끼어들다가 화근이 되어서 궁에서 나온 처지인데 모세는 또 불량한 목자들의 횡포를 보지 못하고 여인들을 보호하게 됩니다.
이드로는 자신의 딸들에게 베푼 친절에 대하여 감사하며 모세를 극진히 대접하고 모세가 그곳에서 정착하고 싶다고 하니 자기 딸 십보라와 결혼을 시킵니다.(21절) ‘십보라’는 ‘작은 새’라는 의미입니다. 궁에서 나와 방황하고 있을 때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우물가에 나타나서 모세의 영원한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모세는 그때부터 장인의 양떼를 40년 동안을 돌보면서 이름 없는 목자의 세월을 보냅니다. 이름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궁에서 지낼 때보다 평온하고 안정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목자로서 자질을 그곳에서 키웁니다. 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도 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 하고,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매일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이 훈련은 장차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로서 매우 중요한 자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홀로 있을 때에도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단순한 삶을 즐기는 사람이 영적인 지도자가 됩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메시지를 자세히 들으시려면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으로 들어오세요.
습관의 폭력
절도범이나 조직폭력배로 형을 살던 이들이 예수 믿고 변화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출옥해서 목회자가 되고 간증집회를 다니고 해서 교계의 기대를 한껏 모은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나기 일쑤다. 다시 예전의 범죄로 빠져들기 다반사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을 일거에 끊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습관의 폭력 앞에 전율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쇠사슬에 의해서가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의지의 쇠사슬에 의해 묶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내 의지가 왜곡되어 정욕이 생겼고, 정욕을 계속 따름으로써 버릇이 생겼으며, 그 버릇을 저항하지 못해 필연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필연이 되어 괴롭힌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흉한 습관을 끊지 못해 신음하는 이들이 많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나쁜 습관을 끊은 이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