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과 영벌
마태복음25:31-46
25장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열 명의 젊은 여자들 이야기(1-13절) 달란트 이야기(14-30절),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31-46절) 세 이야기의 주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실행되면 결과에 대한 평가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25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46절) 땅에서는 모든 사람들은 뒤섞여서 살아가고 있으며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을 것이지만 주님이 오실 때 모든 사람은 둘로 갈라지게 되며 운명을 달리하게 될 것입니다,(32절) 당시 목장에서 양과 염소를 함께 방목하여 키웠지만 양과 염소는 같은 초식 동물이면서도 습성이 달랐습니다. 비슷하지만 양과 염소가 구분되듯이 심판의 때에 구원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하십니다.
양으로 비유된 사람들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5-36절) 이런 자들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고 하십니다.(34절) 그런데 당사자들은 "우리는 주님에게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았으나 주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셨습니다,(38-39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자신 스스로도 모르게 하고 숨어 있었으나 주님은 기억하시고 보상하십니다. 사랑의 시작은 관심입니다. 작은 자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고 존재를 인정하고 따뜻하게 말을 걸고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베푸는 작은 친절은 곧 주님의 손길이 되고,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주를 섬긴다는 뜻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생활과 행동으로 믿음의 고백을 표현해야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섬김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의 이웃을 "내 형제“라고 부르십니다.(40절) 예수안에서 행한 선은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그 삶의 모든 스토리와 눈물과 땀을 기억하십니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행한 선한 것들은 그 하나하나가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없이 선하게 산 것은 계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흉내 낼 수는 있으나 염소는 염소일 뿐입니다. 비슷하지만 같으나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예수안에서 살아간 삶의 순간은 참 소중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작은 자로 내게 찾아오시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로 오셔서 나로 하여금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는 것도 죄이지만,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약4:17) 선을 행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아니나 하나님 나라 백성 됨의 증거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구원의 기준은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며, 이 믿음은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돌봄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영벌이나 영생은 죽은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벌과 영생이 이미 이 땅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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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사랑스럽지 못한 자를...
이태리에 시에나라는 곳이 있다. 그 시에나의 성 카타린(14세기)에게 하루는 어떤 수녀가 찾아와 이런 질문을 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와 긍휼과 관대하심에 대해서 제가 무엇으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할까요?” 이 질문을 받은 성 카타린은 이렇게 대답했다. “고해성사를 더 많이 해보았자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큰 교회를 짓는 것도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지성소이니까요. 기도로 조용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비를 참으로 갚을 수 있는 길을 한 가지 말씀드리지요. 당신만큼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을 발견해서 그 사람에게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주십시오.” 나처럼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을 사랑해주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자세로 나처럼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나를 볼 때에 하나님이 보이고...나의 눈에도 그들이 하나님처럼 보인다면 이미 천국이 임한 것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