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라
마태복음18:1-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까이 갈수록 제자들은 긴장하며 계속하여 다툽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등극하실 때에 누가 높은 자리에 앉으며 중요한 직책을 받게 될 것인가 하는 자리 다툼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사람들에 손에 넘겨져서 고난과 죽임을 당하고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두 번이나 알려주셨는데도 세속적인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라가 세상의 나라와 같이 서열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가 큰 자입니까?" 이는 세속적인 질문입니다. 천국에서 누가 큰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에 어린아이 하나를 모델로 세우시고 교육을 시작하십니다.(2절) 이 말씀은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과 겸손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은 순진하고 착하다고 해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순진함과 착함이 전제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무능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해 주심으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어린이의 특징이 욕심이 없거나 순진하다는 표현은 옛날에나 해당되던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주고 한 입 달라고 하면 주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스스로 독립할 수 없으며 성인에게 절대로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른은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도 집을 찾아가지만 어린이는 어른의 도움 없이 불가능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전적으로 예수님의 필요를 느끼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는 모든 것을 순수히 선물로 받아들입니다. ‘믿음’은 선물을 받기 위해 벌린 어린아이의 빈손과 같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수용적인 자세", 그리고 타인들의 보살핌과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절대 의존 상태"입니다. 제자들은 그런 어린아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어른이 가진 힘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돈의 힘, 권력의 힘, 명예의 힘을 원한 것입니다. 그들이 어른의 힘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타인을 지배하고, 누르고, 폼 내고, 자랑하고, 뻐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 살기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이러한 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힘이 없기 때문에 늘 자존심 상해합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버리고 “돌이켜”(3절)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올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따라는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낮아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신분상승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무력하고 공격당하기 쉬운 천한 자의 위치로 낮아지는 것이 오히려 높아지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린아이들을 만져주시기를 원했으나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며(13,14) 어린아이를 안아 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까지 해 주시십니다.(16)이는 세상에서 천하고 낮은 자인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고귀하고 축복의 대상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낮고 천한 자로 자신을 낮추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떠받드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높이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목사
유튜브 [박근상목사매일성경]에서 더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동네 시장을 바라보면서
어느 사람이 시장 안에 있는 상점을 찾아가는데 시장 골목길이 매우 복잡하였다 한다. 차들도 밀려 있고 꼼짝달싹할 틈도 없이 복잡하여 짜증이 나던 차에 어느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오늘 너무 복잡하군’ 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괜찮아, 시장은 복잡해야 돼’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모든 짜증이 다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 시장은 복잡해야지 내가 몇 분 일찍 가겠다고 시장이 한가하기를 바라서야 되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렇지 시장이 복잡해야 그 안에 경제가 돌아가고 이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지. 막힌 골목을 답답하게 보고 있던 시야를 그의 말 한마디가 열어 주었다. 주변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생각이 바꾸니 똑 같은 주변의 풍경에서 받는 느낌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대전에서 거의 유일하게 5일장이 서는 곳이다. 교회도 가깝다. 정말 교통이 복잡해서 싫었고 촌티가 나서 싫었다. 5일장이 없어지는 것을 많이 원했고 불평했다. 지금은 붐빈 시장을 보며 시장은 그래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한쪽에 좌판을 깔고 앉아 있는 할머니가 정겹고 시끄러운 호객의 외침이 살맛을 더한다. 나의 생각이 이렇게 바뀌는 데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