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믿음
마태복음15:21-28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북쪽에 있는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옮겨서 전도를 하십니다. 거기서 어느 가나안 여인을 만납니다. 예수님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절규합니다. 자신의 딸이 귀신들려 많은 고통을 겪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고쳐달라고 요청을 합니다.(22절) 예수님이 자신의 불쌍한 딸을 고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믿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를 불쌍히.." 고통당하는 자신과 딸을 동일시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아야 할 영혼에 대한 이런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답답할 때 붙들고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도 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짖을 대상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 믿는 신앙인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너 더 중요한 것은 우리도 이런 기도를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니면 제자들에게 진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본보기로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해서 더욱 큰 믿음을 주시려는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것에도 관심이 있으시지만, 믿음이 자라나길 더 원하고 있습니다. 부르짖었는데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이런 막막함을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이때가 회의가 찾아오는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으시고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하자 이 여인은 더 큰 소리를 치며 계속하여 따라옵니다.
예수님이 "나는 이방인을 위해 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24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26절) 겨우 응답이 오긴 왔는데 ‘비웃음’이었습니다. ‘개 취급’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환멸을 느끼고 침 뱉고 돌아갑니다. 만일 그 어머니가 그렇게 한다면 그 딸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모욕과 수치를 감수하고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가 더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이 여인은 다시 일어나서 부르짖기은 말은 이렇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나는 개입니다. 누가 온전한 떡을 달랐습니까? 부스러기, 찌꺼기라도 좋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우리들에게도 이 여인 같은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몇 번 기도하다가 조그만 시험이 오거나 응답이 없으면 금방 포기해 버립니다. 소풍 갔을 때 떨어뜨린 조그만 빵 조각을 수십 마리의 개미가 옮겨다가 한 철 양식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부스러기의 은혜일지라고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하는 어마어마한 은혜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오 여자여”(오 귀나이)라고 부르는데 한글 성경에는 “오”라는 감탄사가 빠졌습니다. “믿음이 크도다“하시고 딸의 병이 다 나았습니다.(28절) ‘크다’라는 말은 “메가스(megas)”인데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메가톤(megaton)”입니다. 크다는 것에도 조금 큰 것, 더 큰 것, 엄청나게 큰 것이 있는데 “메가스”라는 말은 “가장 큰 것, 위대하게 큰 것”을 뜻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기를 바랍니다. “네 믿음이 메가톤급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자세한 것은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작은 성인의 행열에 서다
“나는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만난다” 이 말에는 문제가 좀 있다. 자기 자신을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거나 말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상종할 수 없었던 사람들까지도 대면하여 사귀고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갈고 다듬고 광을 내는 '성인 공작소'(Factory of Saints)이다. 교회 안에는 우리의 사랑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의 모델이 될만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성인들이 많이 있다. 이름만 성인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이 성인다운 분들이 많이 계시다. 그분들이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고개 숙여지게 만드는 성인의 흔적을 한 두 가지씩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시다.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보면 그런 분이 보인다. 다니던 교회마다 섬겼던 그런 '작은 성인들'이 계셨다. 오늘이 지나기 전에 한 번 자신의 과거를 돌아 보시기 바란다. 분명히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친 '작은 성인들'이 기억날 것이다. 만일 그런 사람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나에게 더 많은 겸손의 덕이 필요할지 모른다. 어떠신가? 성인들의 행렬에 진실로 함께 하고 있습니까?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