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피난처
에스겔30:1-26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겔 30:1). 예언은 단순한 미래 점괘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장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말씁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우리를 세우고 그분의 심장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과 그 주변 연합한 나라들 즉 구스, 붓, 룻, 굽, 섞인 백성들 위에 임할 심판이 가까운 것을 알고 “통곡하며”(2절). 통곡’은 의성어(擬聲語)로 히브리어 원어는 'הָהּ' (hah) 영어의 'Alas!'나 우리말의 '아아!'와 유사한 느낌의 소리를 옮겨 적은 표현입니다. 깊은 한숨을 내쉬거나 고통 속에서 내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탄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가깝도다” (겔 30:3). 피할 틈이 거의 없음을 두 번 강조합니다. 그 날의 내용은 “애굽에 칼이 임할 것”(4절)입니다.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웠던 풍요와 안정의 상징 애굽, 스스로 강바닥의 큰 악어라 자처하며 누구도 끌어낼 수 없다 하였던 제국에 칼이 들어옵니다.(3.4절) 이스라엘은 위기마다 본능처럼 애굽을 떠올렸습니다. 족장 시대에 아브함도 그의 아들 이삭도 기근에도 내려갔으나 (창12:10; 창26:2) 언제나 좋은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을 출애굽 전까지 400년늘 주신 것을 그 땅에서 번성케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출12:40). 하나님은 전쟁이 없어 인구가 줄 위험이 없는 애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였습니다. 그곳을 이스라엘을 ‘길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셨으나 그곳이 영원한 피난처는 아니었습니다.
애굽이 타격을 받을 때 애굽에 의존하던 구스가 산고 같은 근심에 빠집니다 (4절). 여기 ‘근심’은 산모의 진통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애굽을 붙들고 있는 자들도 함께 칼을 맞게 됩니다.(5.6절).관계에 중립은 없습니다. 누구와 연합하느냐가 무엇과 함께 무너질지를 결정합니다. 오늘 우리의 연락처, 대화, 친밀함 안에 누가 있는지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을 막아줄 ‘방패’로 애굽을 계산했지만 애굽은 유다를 구할 힘도 바벨론을 꺾을 능력도 없었습니다 (24-25절). 갈대가 아닌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이신 주님께 피하고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유일 피난처로 삼으면 세상 도움을 구걸하는 자가 아니라 은혜를 흘려 변화를 일으키는 통로가 됩니다. 애굽과 바벨론이 싸우면 그들 싸움 한복판에 끼어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편도 바벨론 편도 아닌, 자신의 백성 편이십니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자족하고 (빌4:11-13), 많이 가졌을 때도 가난한 마음을 지키십시오 (마 5:3). 속사람의 부요가 외적 안전망을 대체할 때 구름의 날에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갈대 지팡이가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피하십시오 (시 46:1). 하나님만이 무너진 피난처 시대의 참 안전지대입니다 (19절).
개도 맛을 안다.
미국 회사에서 개의 밥을 개발했다. 영양이 풍부했고, 포장도 아름답고, 광고도 훌륭했다. 그러나 판매량이 계속 줄어갔다. 회사 사장은 시카고에 각 지역이 세일즈 매니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경쟁회사보다 가격은 저렴하고 광고도 월등하고 영양도 좋고 포장도 아름다운데 무엇이 문제인가? “ .....침묵을 깨고 한 사람이 조용히 대답했다. " 사장님, 문제는 강아지들이 그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포장이 문제가 아니라 ‘맛’이 문제이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