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과 그는 누구인가 민22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5월 10일 오전 11:30
- e 57
발람 그는 누구인가
민수기22:1-14
22-25장 말씀에는 나귀에게 책망을 받은 발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을 일관되게 발람을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모델로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의 두 왕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한 칼에 멸망시킨 것은 주변 나라에는 충격이었습니다. 모압은 전에 아모리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했는데(21:26)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를 쉽게 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전면전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압의 발락왕은 저주의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발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하려고 합니다.(5-6절)
발람이 하나님의 선지자인가, 돈을 사랑해서 타락하게 된 선지자인가? 그가 참 선지자로서 타락한 것인지, 아니면 이방의 점술가였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통제를 받고 있으면서도 아주 세속적인 무당의 기질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수 13:22).”고 하며 발람을 ‘점술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모압왕 바락은 저주의 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선지자가 저주하면 이스라엘에게 흉한 일이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저주의 문화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과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향하여 저주로 가득찬 댓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축복을 비는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발락이 발람을 부르기 위해서 발람의 고향 브돌로 사신들을 보내게 되는데, 이 거리는 모압에서 무려 650km 떨어진 곳이어서 한 번 가는데만 최소 20일이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두 차례나 사신들을 보내고 공을 들여서 발람을 불러오려고 했다는 것은, 발람이 가진 명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사신으로 발람에게 온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은 복채를 가지고 왔습니다(7). 발람은 그 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발락의 요청을 거절하고 사신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발락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사신들을 보내는데 더 높은 직급의 더 많은 사신들을 보냅니다. 복채가 엄청나게 불어납니다. 결국 발람은 발락의 요청에 응하여 길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1-1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하여 발람은 자신의 깊은 동기를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신앙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발람의 행동을 길게, 자세히 보면 그는 철저히 세속적입니다. 우리의 동기는 간단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진심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분명해야 한다
점(占)을 “재미로 보는 건데 어때? ”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이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자신이 주인노릇을 하려는 인간의 원죄(原罪)에 까까운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속을 알 수 없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고전2:11.새번역) 그런데도 무당은 인간의 약한데를 한번 찔러 보는 것이다. 누군가가 와서 무엇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고 자꾸 말하는 자를 극히 조심해야 한다. 사울이 죽은 것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무당에게 물었기 때문이다.(대상10:13-14) 귀신은 우리가 물어 볼 대상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된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