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소리 세례요한요1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1월 4일 오전 09:12
- e 11
광야의 소리, 세례요한
요한복음1:19-28
요한이 만일 수백년전에 태어났다면 이사야나 엘리야 같이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선지자로 쓰여졌을 것입니다. 요한은 참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올 수 있도록 굽어지고 굴곡있고 교만한 마음을 곱게 펴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있을 때 이미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고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도 긴장할 정도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냐” 이 말은 단순히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나 그리스도인가”를 물은 것입니다. (19절)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됨됨이가 드러납니다. 그는 단호하게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얼마든지 자기를 노출 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애매모호한 말로 자신을 신비한 인물로 포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분명하게 “나는 아니다” 답변하였습니다. 조금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공개적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아닌 나를 만들려고 하거나 나의 수준보다 더 그럴듯한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단 교주 같았으면 우물쭈물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참 감람나무이다" "내가 그이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를 닮은 세례요한을 보면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은 선지자도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너는 누구냐”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답하였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에 외치는 소리다" 이 아주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로고스(말)는 인격이신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은 비인격체인 소리라고 말합니다. 소리는 섹체나 모양이 없고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자처럼 오직 예수만을 나타내기 위하여 겸손히 살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요한에게 참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선거 때에 찬조 연설을 하는 사람은 후보자를 홍보하고 나타내기 위한 소리일 뿐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집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자마자 매우 조용히 사라집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요한에게 메시아도 아니고 종말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선지자도 아닌데 왜? 세례를 주는가라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자처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이방인처럼 더러운 사람 취급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은 "이 세례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다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도 매어 드릴 수 없는 처지에 사람이다. 나는 그의 노예 자격도 없다" 라고 합니다. 요한은 한순간도 자신의 영광을 구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화의 중심은 오직 그리스도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요한을 메시아로 착각하고 있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로 따르는 시간에도 요한은 언제나 주님만 바라봤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증거 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교회에서 인정도 받습니다. 나를 따르는 저도 생깁니다. 내가 점점 커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위기입니다. 광야의 소리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슨 소리?
광야의 설교자는 자기를 ‘소리’라고 했다. 형체가 없는 소리는 공기의 울림이다. 단순한 파장일 뿐인데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소리로 사랑을 고백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소리로 듣는다. 소리는 자신이 주목을 받는 게 아니라 내용을 성실히 전달할 뿐이다. 소리가 가리키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소리는 메시지를 전달한 후에 사라진다. 광야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광야로, 요단강으로 몰려들게 한다. 그 소리에 생명이 있고, 진실이 있고, 희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강단에는 소음만 가득하고 생명의 소리는 적다. 영혼의 소리가 생명을 살린다.
-오늘아침- 유튜브방송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