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사하는 권세 막2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1월 4일 오전 09:46
- e 569
죄를 사하는 권세
마가복음2:1-12
예수께서 두 번째 가버나움을 방문하셨을 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발 붙일 틈이 없어서 문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통해서 달아 내렸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지붕을 뚫는 것은 욕먹을 일입니다. 뚫린 구멍으로 흑먼지가 쏟아지니 밑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예수님을 그들에게 무례한 자들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주변에 자기 발로 자기 힘으로 주님께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합하여 연합하여 중보기도 하고, 연합하여 그들을 찾아가고 권하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 영혼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있다면 그 사람의 발바닥이라도 핥아야 하지 않겠는가? 손발이 닳도록 빌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5절) 그 병자의 믿음이 아니고 네 사람의 믿음입니다. 발걸음을 맞추어서 환자를 데리고 온 네 친구의 믿음입니다. 네 사람의 믿음이 그 환자를 고쳐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붕을 뚫은 동반자들의 믿음까지 보신 것입니다.
병 고쳐주시기 전에 먼저 죄사함을 선포하십니다,(5절)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시자 서기관들이 이의를 제기합니다.(6절)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는데 왜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고 나사렛 예수가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신성모독이라는 것입니다.(7절) 그들이 문제로 삼은 것은 예수님의 죄사함의 선언이었습니다. 그 선언은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임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용서함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선포하셨으나 종교지도자들의 눈에는 신성모독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표적으로 질병의 치유를 사용하십니다. 죄사함의 선언을 그 효력을 당장 확인할 길이 없으나 병을 고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환자를 향하여 죄사함을 선언할 수 있는 권세가 생긴 것입니다. 병을 고치심으로 예수님에게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표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오해를 무릎쓰고 이렇게 죄사함을 선포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죄사함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은 죄사함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2-6절에서 “의논”이라는 말은 3번이나 쓰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마음으로 확신한다거나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바대로 행동으로 옴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는 어떤 장애물을 있어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죄사함은 영적인 영역이지만 육적인 치유가 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낭비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선교사 짐 엘리엇((Philip James Elliot)의 순교 소식에 대하여 라이프 지는 10페이지에 달하는 기사로 다루면서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What a unnecessary waste!)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멀리 남미까지 가서 제대로 일도 못하고 개죽음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생전에 짐 엘리엇((Philip James Elliot)이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말했다. 남편을 잃은 초반인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은 “낭비라니요? 나의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내 남편은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 뿐입니다. 이후로 다시는 내 남편의 죽음을 낭비라고 말하지 마십시오.”말했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