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의 지혜와 용기 에스더5:1-14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2년 6월 20일 오전 09:42
- e 896
에스더의 지혜와 용기
에스더5:1-14
하나님의 사람이 위기를 돌파하는 무기는 기도입니다. 유대인이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모르드개도 금식하며 성문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엇고 수산성에 있는 유대인과 왕궁에 있는 에스더도 금식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 경우에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끝나자 에스더는 옷으로 갈아입고 왕 앞에 나아갑니다. 왕이 어떻게 나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나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왕이 왕좌에 앉아서 문 쪽을 바라보다가 안 뜰에서 서성거리는 에스더를 보니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보에 물과 같아서 그 길을 막기도 하고 물길을 열기도합니다. 그 마음을 임의로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잠언21:1)
왕이 금으로 된 지휘봉을 에스더를 가르치면서 “사랑하는 에스더여 이리로 오라”부릅니다. 왕은 무슨 급박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왕이 적극적인 표현으로 나라의 절반이라고 달라 면 주리라고 합니다. 왕의 요청에 에스더는 침착하게 치밀하게 왕에게 입을 엽니다. 그는 신하들 앞에서 애걸복걸하지 않고 살려달라고 하지 않고 하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성급히 서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섣불리 경솔한 행동을 취하거나 나중에 후회할 말들을 쏟아놓기도 합니다.
지금 에스더는 왕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주겠다고 할 때에 받아야 처지입니다. 에스더가 조급하게 마음을 먹었다면 그 자리에서 다 말하였을 것입니다. 하만은 교활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들먹거린다면 당장 귀에 들어갈 것이고 나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만약 자신의 정체가 밝혀 질 경우 하만의 역(逆)공작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는 3일을 금식하고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내심을 숨기고 왕을 잔치에 초청합니다. 울먹거리거나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잔치에 하만을 초대함으로 직접 삼자대면의 방식으로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고자 계획을 세웠습니다. 반면에 두 번 초대 받은 하만은 자만심에 잔뜩 부풀어 있어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에스더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에스더는 침착하게 왕에게 잔을 따라주며 벌였으나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에스더는 초청에 응하신 것을 감사하고 한번만 더 하만과 함께 와달라고 요청합니다. 잔치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성문에서 모르드개는 그날도 당당히 서서 바라볼 뿐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그날 집에 돌아가서 왕이 자기를 높이고 자기만 초대하였다고 자랑합니다. 모르드개는 유대인을 다 죽이는 날이 오기 전에 먼저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기로 합니다. 하만은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잠이 들었습니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쓰면서 결론을 무려 29번이나 다시 고쳐 썼다고 합니다. 독자들에게 작가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살아가며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오해를 막기 위해 29번씩 고민해 볼 수 있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는가? 맡기고 기도하시고 하나님 사람답게 침착하고 당당하십시오. 가는 길을 주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들이 응답한 기도
어떤 아이가 아빠가 기도하시는 것을 보니 “누가 어렵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누구누구가 몸이 아픈데 병원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그랬다. 하루는 아빠가 집에 와 보니 통장이 없어지고 폐물함에 모아둔 금반지 금목걸이가 없어졌다. 난리가 났다. 나중에 아이가 돌아와서 자기가 가져갔다고 한다. 아이가 말한다. 아빠가 매일 기도만 해서 아무래도 자기가 기도응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조금 극단적이고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핵심은 기도했으면 그 기도에 내가 책임(責任)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기도이다. 조급함에 빠지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오늘아침-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