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나무
시편92:1-15
이 시는 온 땅을 다스리시는 주의 행사를 찬양하는 안식일의 시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 1-3절까지를 구분 없이 묶어서 번역하였습니다. 원문에는 3절 부분에 있는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가 맨 뒤에 있는데 우리말이 어법에는 악기 이름이 먼저 나오도록 번역을 하였기 때문에 절의 구분을 없앤 것입니다. 원문은 1절의 시작이 “토브”(tobeu. good. beautiful)로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지존자의 이름에 대한 감사를 말합니다. 2절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아침과 저녁으로 전파하고 있으며 3절은 각종 악기들로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92편의 시작은 “참 좋습니다”입니다. 시인은 매일 아침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저녁에는 주님의 성실하심을 경험하고 찬양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주님의 전에 나오니 말로 다 할 수 없이 좋은 것입니다. 안식일은 모든 것을 쉬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 안식으로 들어가서 마음껏 누리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히 4:11) 힘쓰라는 말은 그만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매 주일마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참 좋습니다”라고 외치며 주님안에서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온갖 악기가 동원되고 있습니다. 주님을 찬양할 때에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이 받으실 만한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지존하신 분이시며,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찬양이 오염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자기 흥에 겨워서 마치 유행가와 같이 부르고 있는 것은 찬양이 아닙니다. 조금만 불러도 식상해지는 것이 아니라 늘 불러도 물리지 않는 음악성과 영성을 가진 찬양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늘 먹는 밥처럼 언제 불러도 물리지 않고 늘 나를 힘있게 만듭니다. 아침에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이 우는 것일까? 노래하는 것일까? 우는 것인지 노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듣는 자의 마음입니다. 듣는 자의 마음이 우울하고 눈물이 서려 있으면 우는 것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기쁨이 있는 사람, 감사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노래로 돌릴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위대하고 놀라우며, 주님의 생각은 너무나 깊으십니다”라고 찬양합니다.(5절)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자식에 대하여 품는 부모의 생각을 깊고 깊습니다. 그 생각이 내 가슴을 채우고 세상을 채웁니다. 과거에는 우둔하여 깨닫지 못하였으나 지나고 나서야 고백하기를 “하나님 참 잘하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6절.롬11:33-36)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형통하고 있는 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악인이 잠시 풀같이 성장하는 것을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의인의 삶이 풀과 같이 빠르게 자라지 않음을 답답해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쉬워 보여도, 아무리 넓어 보여도 세상에 우리의 뿌리를 내리지 마십시다. 전개되고 있는 일들이 오리무중일지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에배하는 자는 종려나무처럼 번성함 백향목처럼 자라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은혜 받는 자의 삶은 늙어도 결코 시들지 아니합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아침이 쌀쌀하다
삶이란 흐르는 솜털 구름 같고 때론 화려한 뭉게구름 같다가도, 일순간에 또 다시 잿빛 하늘에 그 자취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다. 한없이 푸른 하늘로 새벽을 맞이하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나에게 주시는 하루의 호흡이 있고, 의미가 있는 행보가 시작된다.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 넘어져도, 일어나도, 굴러도, 뛰어내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익어져 가는 과정이다. 제법 서늘한 아침이다.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는 잔인함을 경험하지만 잘 견디고 남은 것들이 여물어 가는 것을 보는 행복한 계절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