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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로마서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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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로마서8:1-8
 로마서를 나누면서 적은 지면(紙面)의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꼭! 부탁할 말이 있습니다. 6-8장까지는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꼭 유트브 [박근상목사매일성경]에서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7:24절의 “나”는 누구일까? 예수를 믿고 나서의 바울일까? 아니면 예수를 만나기전 바리새인일 때에 바울일까? 저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오래토록 고민하며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몇 년 동안 7-8장을 분명히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 잡혀서 많은 책과 강해서는 읽었으나 확실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현재시제로 나타나고 있는 ‘나’가 과연 누구인가? 7장 7절부터 25절에 나타나는 바울의 ‘나’(ego)에 대한 이해가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접하면서 그 깊이에 대하여 또 다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이 자신은 여전히 죄에 사로잡혀 있다고 자신을 묘사할 수 있는가? 저는 7장을 묵상하면서 바울이 마치 저를 거울에 세우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로 36년을 살고 있는 지금도 바울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거듭나지 않은 불신자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율법은 내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나를 죽음에서 일으켜 주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을 끔찍할 정도로 좋아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고 모진 애를 쓰고 있으나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내안에 공존하고 있음을 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로 인해 고통스러운 탄식을 합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닌 무의식적 욕망입니다. 

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는 추호도 의심이 없습니다. 내가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죄’의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 일지라도 자신이 분열된 존재임을 경험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그리고 아직 아니’(already but not yet)라는 사이에 끼어서 긴장하고 갈등하며 가고 있습니다. 이미 의롭게 되었으나 아직은 영화롭게 되지 아니한 존재입니다. 거듭남은 성화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현재의 완전한 칭의가 종말에 불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아직’이라는 말은 종말에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통치도 받고 마귀의 통치도 받는 이중적인 통치를 결코 받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 받을 뿐입니다. 이중적 통치란 사실상 마귀의 통치입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그 나라를 영구적입니다. 
 
 우리는 7장과 8장을 동일선상에 보아야 합니다. 내면의 싸움에서 지치고 넘어지게 될 때에 승리할 수가 없는 싸움이라고 손을 드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패배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8장에 이르러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선언을 읽다가 너무나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어서 잊지 않으려고 꼭꼭 눌러서 밑줄을 그었더니 히브리서까지 자국이 났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이 반지라면, 로마서는 반지 위의 고귀한 보석이고, 8장은 '그 보석의 빛나는 부분이다.'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정죄함이 없나니”(1절) 내 힘으로, 내 원대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선언을 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 즉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가지 못합니다. 아직도 율법 아래 있다면, 그 법대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이제는 “생명의 법, 성령의 법” 아래 있는 자로 신분이 변하였습니다. 이 "생명이 법“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법입니다.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보내시고 그 육신에 죄 값을 담당시키셨습니다.(3절) 주님의 피 한 방울만 가지고도 모든 인간의 죄 값을 치를 만큼 보배로운데 그 피를 아예 다 쏟아 부어 주셨으니 차고도 넘칩니다. 충분합니다. 예수 믿으면 주님이 세우신 생명의 법이 효력을 발생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37절에서는 넉넉한 승리자, 압도적인 승리자(more than conquerors, overwhelmingly)가 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장의 승리의 선언입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목사
꼭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더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승리의 편에 서 있습니다.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편지를 쓸 때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마무리하는 경향이 있다. “승리 편에 서 있는 00로부터..”(on the victory side / on the winning side) 이 표현을 맨 처음 쓴 사람은 유명한 청교도 장군이었던 올리버 크롬웰이었다고 한다. 영국에서 내전이 벌어졌을 때, 그는 상황이 매우 불확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쓰고 있는 편지 맨 마지막에 ‘승리 편에 서 있는 올리버 크롬웰’이라고 썼다. 공문서에도, 모든 서신이나 개인편지에도 이 표현을 썼다. 따라서 그 휘하의 참모들과 스텝들은 크롬웰 장군에게서 내려오는 공문서를 읽을 때마다 그들의 지휘관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음을 공감하였다. 자연적으로 모든 병사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이 전염병처럼 확산되다보니 불리한 전세에서도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이 힘든 때에 우리도 이런 편지 한 통 써봄이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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