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아직도 전쟁중
로마서7:14-25
본문에서 내, 나의, 내가, 내 속, 내 지체, 나는..이라는 1인칭을 사용합니다. 7장은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고 30년 목회자이며 선교사인 바울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입니다. 가시나무라는 CCM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없네...“ 처음 구원의 감격을 체험할 때는 어떤 죄악도, 어떤 시험도 이길 것 같고, 다 사랑만 하며 살 것 같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았는데 어떤 때는 믿음이 없는 것처럼 허무한 것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 안에서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자동차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는데 차가 왼쪽으로 가고,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차가 멈추지 않습니다. 마음의 생각도 의지도 분명한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나는 잘해보겠는 의지도 분명하고 심도 하고 노력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경험합니다.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꾸만 죄로 기울어 가는 것을 자신을 보면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그는 두 손을 들고 탄식합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24절)라고 탄식합니다.
그런데 24절은 우리를 절망시키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탄식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예수를 안 믿는 불신자는 결코 이런 탄식을 하지 않습니다. 영이 살아 있는 사람만이 이런 고통을 느끼며 너무 힘들어 탄식하며 울부짖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살속에 이 물질이 들어와서 나를 찌르고 있기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요로(尿路)에 돌맹이가 끼어 있을 때에 그 아픔으로 몸서리를 칩니다. 바울이 겪었던 고통은 영이 살아 있는 사람, 하나님이 뜻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사람만이 겪는 리얼한 고통입니다. 우리안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나로 인하여 탄식하시고 슬퍼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24절에서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라고 하던 바울이 왜 갑자기 25절에서 주 예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죄 때문에 절망하고 몸부림치는 분들이 있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바울이 자꾸만 부패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신을 보고 탄식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죄에서 이기게 하시는 분은 죄에게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죄의 권세에 끌려 다니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함으로 칭의가 불가능했던 것처럼, 성화도 우리의 행함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내면은 아직도 전쟁중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서 승리해 보겠다는 거룩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탄식합니다.(히12:4) 오늘날의 교회는 전의를 상실한 군인들로 꽉 찬 군대 막사와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승리를 보장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주시는 구원과 승리를 바라보면서 찬송하고 있습니다.(25절) 7장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방법은 8장에 나와 있습니다. 다음을 기대하십시오.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납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목사
꼭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더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속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나는 그만 돌을 들고 그 여자를 치고 말았다. 오늘도 새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지나간다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