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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나님을 믿는 자의 복 시편14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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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나님을 믿는 자의 복
시편145:1-15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반석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반석은 바윗돌을 의미합니다. 바위는 집을 짓는 사람이나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골치 아픈 존재입니다. 그래서 깨고 캐냅니다. 그러나 산이나 바다나 강에 있는 바위는 경치와 어우러지면 사람들을 감탄하게 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대부분 사막이고 메마른 광야입니다. 허허 벌판에 큰 바위는 은신처가 됩니다. 큰 바위 밑에는 굴이 있어서 거기에 숨어 더위도 추위도 피하고 맹수의 공격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바위 밑에서 물이 나와서 목을 축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반석입니다. 그 반석에서 200만이 넘는 사람이 물을 마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바위”이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도 요새, 산성도 피할 바위를 의미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2절) 이 말씀은 시18편의 말씀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기를 공격하는데 대적으로부터 자기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며 또한 방패시요 요새이신 하나님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일생을 살면서 왕으로써 얼마든지 권세를 누리면서 살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왕권을 주셨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왕의 자리가 대단해서 백성들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복종케 하심으로 그들이 왕권을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가 왕이면서도 자기보다 더 큰 권세인 왕 되신 하나님 앞에 늘 무릎을 꿇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2절)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면 인생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니까”(3절)  “사람이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니면 마귀의 자녀인가? 이 정체성을 심각히 생각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한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이 나를 존귀하게 세우시며 대접하시며 인정해주시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있습니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습니다.(4절) 한 때는 대단한 것 같은데 내려 앉으면, 나이가 들면 실체가 없어집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라지기 전에 스스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생명은 한 숨과 같은 것이요. 신기루와 같은 것이요. 그림자 같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앞에서 인간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찰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십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은 너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12절) 곡간에는 곡식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들이 천천 만만으로 떼를 이룹니다. 아들들이 나라나서 장성한 나무같이 되고 딸들은 잘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가정에 이런 축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젊은이들,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교회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양육되어 지며, 교회의 후대가 이어져 가는 교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자에게 이런 복을 주십니다. 내가 이제까지 살았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시더라고 확실하게 간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박근상목사]에서 더 자세히 들으시고 구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과연 종교인가?(1)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종교는 다 좋은 것 아니냐? 어느 것이든지 진실하게 믿으면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에는 분명히 선하게 살라는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은 아니다. 예수님은 당시 율법의 의로는 조금도 흠잡을 것 없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시체가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하셨다. 기독교의 핵심은 아주 고차원적인 도덕성을 계발하여 더욱 더 선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뉴스”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인간을 향하여 “승리했다“ “살아난다”는 소식이다. 좋은 견해(good views}가 아니고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소식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땅 아래에서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는 노력을 가르친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가는 긴 여정이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기독교의 탁월성입니다. 성경을 간단히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3:16)고 합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다.
-기독타임즈에 연재하는 투고 기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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