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 창세기27:1-34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2년 9월 24일 오전 08:46
- e 814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
창세기27:1-34
이삭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어 잘 보지 못하였고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합니다.(1절) 이삭은 이삭은 리브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으나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장자인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고자 하였습니다. 남자답고 성격도 활발하고 사냥하기를 좋아하고 아버지를 기쁘게 했던 에서를 대를 이어갈 장자로 여겼 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사냥을 해서 늘 먹던 그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오면 축복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3-4절을 보면 “나”라는 말이 무려 5번이나 반복하면서 축복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가 주체인 것처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브가는 어떻게 하든지 에서가 축복을 받는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리브가가 남편에게 하나님의 뜻을 말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설득해서 에서에게 복을 비는 것을 막았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삭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에서에게 복을 빌려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때를 기다리면서 됩니다. 야곱에게도 “야곱아 네 아버지가 너를 축복하지 않았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너를 축복하리라 잠잠하여 기다리라 하나님을 신뢰하라 인간이 수단 방법을 쓰지 말라”고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리브가는 기회를 놓치면 야곱이 모든 축복을 다 빼앗길 것 같은 절박한 마음의 앞섰고 야곱에게도 그런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남편 이삭과 아들 에서를 속이고 야곱에게 대신 장자의 축복기도를 받게 하고 온 가정이 고통을 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극성스러운 어머니는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저주를 받을 일이 있다면 자신이 받겠다며 야곱을 안심시킵니다. 리브가도 야곱도 이삭과 에서를 속이는 일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눈도 귀도 어두운 이삭에게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18.19.24절) 합니다. 야곱은 늙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의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에서가 사냥해가지고 와서 아버지를 부르니 이삭은 심히 떱니다. 이삭은 그때서야 인정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너에게 축복할 것이 없다. 이미 야곱에게 축복을 했다. 그가 그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에서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성경 원어에는 통곡했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이삭은 이때 오히려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에서야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구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불순종하고 억지로 너를 축복하려 했는데, 결국 그 축복이 받을 사람에게 가고 말았다. 에서야, 원래 그 축복은 네 것이 아니라 야곱의 것이다. 너와 내가 잘못 생각하며 고집을 부린 것이고, 이제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것이다. 그러니 그만 울고 이제 야곱을 축복해주자.”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을 양보하고 눈앞에 있는 이익을 추구했던 에서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았습니다. 간수해야 할 것은 잘 간수해야 합니다. 빼앗아 가는 사람도 나쁜 사람이지만 더 어리석은 사람은 빼앗기를 사람입니다. 빼앗기는 사람은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태함
이삭도 영적으로 나태해지면서 분별력이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블레셋과 분쟁이 끝나고 오랜세월 평안에 잠기다 보니 나태에 빠지고 영적이 분별력까지 흐려졌다. 마틴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 목사님은 목사의 가장 큰 죄는 '윤리적 타락'이나 '물질적 타락'이 아니라 '나태함'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하나님의 은혜도 자는 인간을 깨우지는 못한다.”다고 했다. 잠은 스스로 깨는 수밖에 없다. 나태해지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영적 분별력도 사라진다. 그러면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정욕으로 하게 되어 있다. '나태함'은 모든 타락의 주범이다. 그래서 누구를 위한 기도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펴야 한다.
-오늘아침- 유튜브[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