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 창세기4:1-14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2년 8월 9일 오전 10:00
- e 801
가인과 아벨
창세기4:1-14
인류의 최초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라 타살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형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동쪽으로 가서 자녀를 낳습니다. 첫 아들 가인을 낳았을 때에 하와는 고백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며 기뻐했습니다. 가인은 장자로서 하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아벨을 낳았는데 의 이름의 뜻이 ‘하찮다’ ‘허무하다’. ‘한 숨’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벨에게 별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와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오늘 내가 드리고 있는 예배는 어떠한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인은 직업이 농부이기에 땅의 소산 인 곡식을 드렸습니다. 아벨은 목축업을 하였기에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렸습니다. 수고하여 얻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 것은 옳은 일입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가인이 시장에 가서 제물을 사온 것이 아니고 자신이 땀 흘려 얻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으나(4절)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아니하셨습니다.(5절)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말하지 않고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히11장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합니다. 어떤 이는 가인이 피가 없는 곡식을 드렸기 때문에 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물이 문제가 아니라 가인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물론 가인의 제물에는 첫 번째라든지 최고라는 수식어가 없습니다. 아벨의 제물에는 첫 것과 기름을 수식어가 붙습니다. 아벨은 처음부터 제물로 구별한 짐승과 기름진 것을 드렸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특별한 의미는 없었습니다. 제물에 있어서 비교가 됩니다.
받으셨다(4절)는 히브리어는 ‘세심하게 지켜보다’ ‘쳐다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유심히 보셨을까요? 아벨을 보시고 가인을 유심히 보신 것입니다. 경에는 제물보다 사람이 먼저 언급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삶의 발걸음, 그의 모든 것을 살펴보시고 한사람은 받으시고 한 사람은 거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제물도 거부당한 것입니다. 이사야 1장에 하나님께서 제물 타는 냄새가 역겨워 견길 수 없으니 제물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제물을 들고 오는 손이 더러웠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목적이 있으면 안됩니다. 목적이 있다면 오직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목적이 있다면 섭섭함이 생깁니다. 이기적인 예배는 거기에 자존심을 겁니다. 그래서 예배가 가부당할 때 가인은 분해서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차마 화를 내지 못하고 동생에게 분풀이를 합니다. 아벨이 들에 나가 있을 때에 동생 아벨을 쳐 죽입니다. 사람에대한 사랑의 마음도 책임감도 없었습니다. 가인의 살인은 하나님에 대한 분노였고 반항이었습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예배자는 죽어서도 말합니다.(히11:4) 그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관심 아래 있습니다. 가인은 말이 많으나 아벨은 오직 예배로 말했습니다. 죽었으나 그는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벨은 말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간증을 기록하고 있다. 믿음의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위대한 간증을 남긴다. 천국에 가서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찬송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일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롬14:12).그때 간증거리가 없어,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벨은 이 땅에서는 한 마디도 남기지 못했으나 천국에서는 그가 드린 예배에 대하여 말하게 될 것이다. 계시록을 보라 하나님 보좌 가장 가까이에는 순교자들의 간증이 있다.
-오늘아침- 유튜브[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