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던 밤에 에스더6:1-14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2년 6월 21일 오전 08:00
- e 943
잠 못 이루던 밤에
에스더6:1-14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인도였습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에스더서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연의 반복 가운데 가장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시고 계십니다. 하만도 유대인들을 다 둑이기 전에 자신에게 끝까지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먼저 제거하기 위하여 발 빠른 움직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 장대를 준비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에스더도 내 일 잔치를 생각하며 잠이듭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모르드개도 잠이듭니다. 그런데 그 날 왕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잠을 빼앗아 가셨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에스더가 자기를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헤어져야만 했을까? 잠 못이루는 밤에 술에 취하든지 무희를 불러다 춤을 추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궁중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실록을 가져오게 하고 읽게합니다. 산더미 같은 역대실록 가운데 5년 전에 있었던 빅다나와 데레스라는 내시의 역모 사건이 적힌 부분을 듣게 됩니다. 이는 마치 태평양 바다에서 노는 수천 억 마리의 고기 가운데 특정한 고기 한 마리가 오늘 저녁 밥상에 오를 확률만큼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을 왕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왕도 그 일을 기억합니다. 왕은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는데 고변(告變)을 모르드개가 어떤 관직이나 상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때에 보상을 받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이때를 위하여 상 받는 것을 미루게 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있겠으나 후일에 더 큰은혜를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날이 밝자 하만은 자신이 세운 교수대에 모르드개를 매달리기 위하여 왕이 허락을 받기 위하여 때마침 도착하였습니다. "마침"(4절) 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오묘한 인도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차 공격이 개시된 것이며 하만은 꼼짝없이 걸려든 것입니다. 왕이 하만에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무슨 상을 주면 좋겠느야고 뜬금없이 묻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하만은 “아 그것은 딱 나이다“라고 착각을 합니다. 하만은 숨도 쉬지 않고 왕이 입는 옷을 입혀주고 왕이 타는 마차에 태우고 관을 씌워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평소에 하만이 꿈꾸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만의 제안을 들어보면 심지어 왕의 자리까지 탐내고 있는 속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네 말대로"(10절) 즉시 모르드개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만은 입이 벌어져서 닫히지가 않습니다. 자신이 모르드개가 탄 말의 고삐를 잡는 마부가 될 처지입니다.
하만은 한없는 절망과 수치심에 빠져서 집으로 돌아와 사실을 알리고 지혜로운 자와 아내 세레스에게 방도를 물었으나 결론은 “분명히 그 앞에 엎드려 지리이다."라는 경고를 받습니다.(13절)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13절) 이 말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돕고 간섭하고 계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궁의 내시들이 급히 찾아와 에스더가 베푸는 두 번째 잔치에 빨리 오라는 전갈을 받습니다. 하만은 잔치에 가야만 하는데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습니다. 영광은 치욕으로 변하고 치욕은 영광으로 바뀝니다. 왕과 하만이 주연한 이번 무대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일하고 계십니다. 그 일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모두가 잠을 자고 있는 그 순간에도 깨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을지라도 삶은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주안에 삶은 결국은 잘 될 것입니다. 밤이 깊어지지만 반드시 새벽이 밝아옵니다.
내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월남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위한 기념묘지가 1982년에 만들어 졌다. 58,956명이나 되는 미국인들의 이름이 일일히 새겨져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어떤 이름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다. 손가락으로 자기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 보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의 마음에 큰 의미가 있는 이름들일 것이다. Robert Bedker, Willard Craig, Dairall Lausch 세 사람은 월남전 기념묘지를 방문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긴 검은색 돌로 만들어진 전사자 명단이 있는 벽에는 데이타 실수로 이 들 세 사람들이 모두 죽은 사람들로 처리되어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살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성도의 모습니다.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할 수는 있으나 죽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죽은 자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아침-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