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구조사(1)
역대상 21장1-8
본문은 역대기에 등장하는 다윗의 유일한 범죄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치릅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해지니 그의 안에서 강력한 한 충동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인구조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숫자가 얼마나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충동은 사단이 심어준 마음이었으며 다윗의 부하인 요압고 심지어 하나님도 말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단은 숫자에 매달려 웃고 울게 만듭니다. 일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진실을 말하여 주지 않습니다. 내안에 충동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를 깊이 살펴 보아야 합니다. 저속한 충동을 열정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주변에 숫자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숫자는 결국 제로(0) 게임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연한(年限)도 재산도 다 제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시인은 나의 남은 날을 세며 사는 지혜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시90:12) 고후4장을 보면 이 세상의 신, 어둠인 사단은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임하지 못하도록 막아 버리고 혼돈스럽게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자유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뭔가에 매어서 끌려가고 있는가? 보아야 합니다.
민수기에는 2번이나 인구조사를 시키셨습니다. 국가도 학교에 들어갈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군대에 들어갈 장정이 얼마나 되는지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인지 노인인구가 얼마인지 임신이 가능한 연령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나라의 정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국가정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확인하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을 때에는 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셀만한 것이 쌓여가면 숫자를 세기 시작합니다. 왕실의 창고에 보물이 쌓여가고 군대의 수가 늘어나고 나라가 확장되고 인구도 늘어나게 되니 숫자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기가 비슷하였기 때문에 사람 숫자가 많은 것이 군사력이었습니다.
인구조사를 하는 것을 막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요압이었습니다.(3절) 앞으로 하나님이 주실 축복이 무한한데 여기서 숫자를 헤아리고 여기서 끝날 것이냐는 것입니다. 숫자를 헤아리고 숫자를 힘으로 삼는다면 하나님의 복은 여기에서 중지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감사하고 크면 큰대로 감사하고 주신 것에 감사할 때에 더 많은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다윗은 한순간에 폭군처럼 되어서 요압을 위협합니다. 사람이 망하려고 하면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고 귀가 막혀 버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듣지 못하고 사람으로부터 듣지 못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내가 내어 놓아야 할 자랑은 무엇입니까? 내가 드러내고 자랑할 분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많은 신을 믿는다고 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만이 나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가끔 듣는 질문이 교인들의 숫자를 얼마이고 헌금은 얼마나 나오는가를 묻습니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what is it to you?) 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의 내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사라지는 수(數) 남는 수(數)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중심은 숫자다”라고 했다. 숫자가 많은 돈이 많은 돈이 아니다. 술집에 가서 팁으로 주는 10만원하고, 주를 위해서 쓰는 1만원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영적인 숫자를 세보라. 나는 얼마나 전도했는가? 나는 얼마나 기도했는가? 나는 얼마나 성경을 보았는가? 나는 얼마나 예배를 드렸는가? 세상의 숫자는 있다가도 사라진다, 숫자란 자꾸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줄어들기도 한다. 숫자를 세다보면 숫자의 종이 되어서 늘 불안하고, 잠을 못자고 , 자다가도 벌떡 일러나서 계산기 두들긴다. 이것은 병입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