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들의 믿음은 동일하다
로마서4:1-8
로마서를 받는 독자는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인 신자이며 복음을 다시 들어야할 모든 사람들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 유대인에게 가장 존경을 받는 두 사람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를 들어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1.6절) 이스라엘 역사에 두개의 봉우리가 있다면 하나는 아브라함이고 또 하나는 다윗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첫줄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시작됩니다.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자랑할 것이 무엇인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율법의 의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1-3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관념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는 질문을 합니다. “없느니라”(2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인이 된 것은 그의 행위나 업적, 공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무당집 아들이었습니다. 우르에 살 때, 우상 숭배하는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았고, 뿌리 깊숙이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고 오라버니라고 속여 극진한 대접까지 받았습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를 두고 평생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구원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3절)라고 합니다. 일한 사람이 대가로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4절) 일한 것이 없이 받았으니 오직 믿음! 오직 은혜입니다. 그의 경건치 아니함을 삯을 받았다면 멸망이 마땅한데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하신 것입니다.(5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후손을 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갈3:16절을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아브라함이 무조건 많은 자손을 둘 것이라는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많은 자손 가운데서 한 중요한 자손이 올 것인데 그 자손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우리처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자신의 후손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구원자를 보내신다는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이 본질에 있어서 동일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장차 보내주실 메시야를 믿었고, 지금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이미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우리와 아브라함 사이에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선포하기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갈3:7)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동일한 믿음이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깊이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두번째로 다윗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성군이요 영웅이요 음악가요 시인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존경을 온 몸으로 받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그의 목을 누르고 있었고 여름 가뭄에 타는 땅처럼 말라 붙게 했습니다. 자신의 죄의 기록을 몰래 없애려고.. 가려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스스로 없앨 수도 가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친구이며 선지자인 나단의 도움을 받아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게 됩니다. 용서 받은 자의 행복에 대한 고백이 시편 32편입니다.(7.8절) 사람들이 행복한 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하여 이민을 떠나고, 쾌락에 자신을 던져보지만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행복은 죄의 사하심을 받고 주님과 교제하는 삶입니다. 죠지 스위팅(George Sweeting) 목사는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 뒤에 있는 죄인 만큼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습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목사
유튜브 [박근상목사]에서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자동문과 믿음
자동문은 가까이 가면 자동으로 열리지만 한발자국만 떨어져 있어도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 문이 열릴 것을 믿기에 자신 있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 만든 문 하나도 굳게 신뢰하면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할까요?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되 뇌이면서도 자주 신앙의 발걸음을 멈추고 있지 않는가?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작은 장애물만 놓여 있어도 쉽게 걸음걸이를 포기하지 않는가? 더 이상 망설이지 마십시오. 어떠한 낭떠러지가 있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 믿음의 다리를 놓아주실 것이다. 우리 앞에 닫혀진 문이 가로막혀 있다면 그때가 믿음의 걸음을 선택해야 할 때이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