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간 전도자 행8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3년 7월 1일 오후 03:14
- e 634
광야로 간 전도자
사도행전8:26-40
교회가 핍박을 받고 흩어지게 된 일은 소멸되는 길이 아니라 흩어진 홀씨처럼 또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영토를 만들었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천년이 넘도록 담을 쌓고 살았던 사마리아로 들어갔습니다. 사마리아의 전도사역을 매우 성공적이었고 아직도 마무리가 안된 상태입니다. 거기에 교회를 세우고 일꾼을 세우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26절) 그런데 성령께서 사마리아를 떠나서 광야로 내려가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가사는 불레셋 5대 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애굽으로 이어지는 해변길(via maris)입니다. 가사는 해변 길의 마지막 통로이기 때문에 거기서 물과 음식을 구하여 길을 떠나가게 됩니다.
지금 빌립이 만나야 할 사람은 마차를 타고 광야 길을 이동하고 있습니다. 광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할까요? 말까요? 토론했다면 가지 않는 쪽으로 결정이 났을 것입니다. 교회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결정만 내리고 상식적으로 일한다면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만일 지체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면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지나가 버렸을 것입니다.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십니다. “일어나서 가서 보니..”(27절) 거기에 에디오피아가 있었습니다. 더운 날 말하기도 귀찮을 때 응달에서 쉬면서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일어나서 보니” 이 말은 감탄하는 말입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맏은 고위 관리였습니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 예배에 참여하고 돌아가면서 뭔가가 빠진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많은 시간과 물질을 들여서 성실하게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지만 그는 이방인이 머누는 뜰을 서성이다가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예배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예수를 만나지 못한 복음이 필요한 자였습니다. 전도란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예비하시고 택하신 그 사람을 그냥 거두어 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누구를 택하셨는지를 모르니까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자꾸 접촉하다 보면 택한 사람은 반응을 합니다. 복음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덩컹거리는 수레 위에서 성경을 펼쳐서 소리를 내어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고 빌립이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빌립이 읽고 있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읽는 것을 깨닫는가”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30절) 교회안에는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말씀을 알고 싶으니 가르쳐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읽고 있는 그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합니다.(35절)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이렇게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내시는 세례를 받고 홀연히 그곳을 떠났습니다. 영혼의 문제, 죽음의 문제, 죄의 문제, 고난에 대한 문제, 철학적인 질문도 예수안에서 다 풀립니다. 우리도 순종하여 삶속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얼굴이 전도지
네덜란드의 한 마을에 얼굴이 아주 험상궂은 노인이 있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그 노인을 싫어하고 외면했다. 그런데 한 소녀만은 얼굴이 흉한 그 노인을 늘 웃음으로 대했다.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노인의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노인은 4만 불(4억 원)의 재산을 자기에게 늘 미소를 보내어 준 그 소녀에게 남겨 주었다. 웃으면 복도 오고 돈도 오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웃으면 영혼도 달라붙게 된다. 얼굴이 저녁을 굶은 시어머니처럼 샐쭉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가도 도망을 가게 된다. 얼굴이 전도지이다. 인격도 전도지이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