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아름답게 창세기50:1-14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2년 11월 23일 오전 08:49
- e 1166
마지막을 아름답게
창세기50:1-14
창세기 100번째 묵상입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37:1-2)로 시작된 야곱의 이야기를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49:33) 또한 요셉의 죽음과 형들의 이야기로 창세기도 막을 내립니다. 야곱은 침상에서 일어나 자녀들을 위하여 한 사람씩 축복기도를 하고 숨을 거둡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멈추게 하기에 죽음을 끝이라고 합니다. 죄를 지어서 처벌 받을 사람이 죽어서 존재하지 않으면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됩니다. 50장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죽지 않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창세기의 족장들은 아직도 죽지 않고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임종의 순간을 지켜볼 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는데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힘든 문을 통과할 때도 편안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으나 그는 죽을 때 편안히 죽었습니다.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남기고 여한 없이 살다가 세상과 작별하였습니다. 아들들을 축복할 때에는 기력을 다해 침상에서 일어났고, 자식들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마친 후 그는 죽을 시간을 미리 알고 정확히 맞춘 듯이 세상과 이별합니다.
야곱이 죽자 온 애굽이 매우 슬퍼하며 예를 갖추어 국장으로 치릅니다. 세월이 지나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전락하였지만 한때 애굽도 야곱 일가로부터 은혜를 입고 살아났으며 그에 대한 감사로 야곱의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렀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기억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온 시절의 기억은 이들에게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될 수 있기에 야곱을 모르는 다음 세대에 전해주어야 했습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애곡한 이유는 요셉이 비록 히브리 사람이었지만 흉년 가운데 나라를 건지고 매우 강한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의 시계는 항상 더 빨리 갑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탁월성을 나타냅니다.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정치능력, 경영능력, 위기관리 능력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예술 작품 같았습니다. 야곱은 이런 유능한 아들 요셉을 두었기 때문에 그를 낳은 아버지도 귀한 사람이 되었고 죽음조차도 안타까워했습니다.
야곱이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한 이유는 땅에 몸을 붙이고 살았지만 그 마음을 약속의 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천국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가까운 것은 잘 안보이고 먼 것은 잘 보입니다. 그래서 신문도 멀리 떼놓고 보아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가까이 있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야곱의 죽음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의 말년이 갈수록 성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께 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한 민족의 조상으로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결코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늘 백성은 하늘 백성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나라를 사모하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건너가게 하소서
요르단의 느보산에서 보면 서쪽 하늘 아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나안 땅이 보인다. 모세가 서서 가나안을 바라보던 바로 그 곳이다. 120살의 모세가 40년의 광야 여행을 마쳐가며 얼마나 건너가고 싶었을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신34:4) 눈으로 보기에는 가까웠지만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먼 곳이었다. 말씀을 붙잡고 있으면 약속은 가까우나 아직은 멀리 남아있다. 기록된 약속의 말씀을 붙들면 주께서 그곳까지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