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당한 주인의 아들
마가복음12:1-12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주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셔서 성전을 거닐고 계시는데 그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나와서 무슨 권위로 성전안에서 이런 일을 하는가? 누가 이런 일을 할 권위를 주었는가를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오늘의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어떤 사람이 좋은 땅에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았습니다.(1절) 당시에는 멀리 타국으로 여행을 떠난 주인과 그가 고용한 농부들의 관계가 당시 많았습니다. 주인이 부득불 먼 나라로 출장을 가게 됩니다. 당시에는 몇 개월 몇 년 동안 무역을 하러가는 장사꾼들이 있었고 아주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은 소작할 수 있는 농부를 구해서 포도원을 맡기고 떠납니다. 포도원은 당시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포도원에서 일하는 농부는 하나님의 일을 위임 받아서 일하는 종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얼마 있다가 세를 받기 위하여 한 종을 보냅니다. 주인이 소작농에게 세를 받으려 했을까요? 포도원을 잘 관리해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종을 때려서 보내고(3절) 또 다른 종을 보내니 머리를 때려 수치스럽게 보냅니다.(4절)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이제는 때려서 죽입니다. 얼마든지 포도원 주인은 얼마든지 법적인 조치를 할 수 있고 그를 끌어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참고 또 참으면서 그 포도원을 잘 가꾸기를 원하였습니다. 이 농부의 행동은 갈수록 더 나빠집니다. 때리고(3절) 머리를 치고(4절) 이후에는 때려서 죽입니다.(5절)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잘 관리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도록 지도하고 도우라고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자기 자신의 위치를 잊습니다. 가야바와 안나스에게 이어지는 가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이익을 얻어내고 장사꾼들을 끌어 들입니다. 교회는 이익을 남기는 이익 단체도, 권력을 나누는 기관도 아닙니다. 섬기는 곳이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모두가 기억해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냅니다.(7절) 6절을 보면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 말은 예수님을 마지막 구원자, 유일한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그를 거절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 아들을 보내면 주인을 공경하리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영접하면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아들을 죽여서 포도원 밖에서 성밖에 버렸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으로 결국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습니다. 성문 밖에 언덕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건물을 지을 때에 머릿돌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었으나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 건물의 머릿돌이 되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의 이름이고 그가 교회의 터가 되시고 교회의 주인이 되신 분이십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 없는 끄떡 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 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