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터위에 성전을 건축하다
역대하3:1-17
3장은 솔로몬이 다윗의 유언에 따라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건축 장소에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1절) 예루살렘 모리아 산이라고 말합니다.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곳입니다. 바위에 위에 그 아들을 올려놓고 제물로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 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준비해 두셨던 그곳입니다. 또한 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한 일로 말미암아서 3일 동안 온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돌게 되고 7만명이 죽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며 용서를 구할 때에 그를 만나 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셨던 곳이 이곳입니다.
다윗이 수십년 동안 충분히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솔로몬 유언하기를 더 충분히 준비하여 건축하라고 합니다. 대충하지 말고 혹시라도 빠진 것이 있으면 다 구비하라는 것입니다. 건축을 준비하는데 4년이 걸린 이유는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한 것입니다. 성막에 비하여 성전의 규모는 더 컷으나 기본적인 설계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양식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갈라놓았습니다. 이 휘장은 예수임이 돌아가실 때에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그 휘장입니다.(히10:19.20절)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를 찢으시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얼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이 성전을 헐면 그리하면 3일만에 다시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을 헌다는 말씀은 이 휘장을 다 거둬 내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우리의 죄를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자기의 몸을 친히 찢으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시고 우리의 생명이 구주가 되시고 우리의 생명의 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성전 입구에는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사실 성전 건축에 있어서 가장 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다름 아닌 다윗과 솔로몬입니다. 또한 그들은 보통 사람도 아니고 나라의 왕입니다. 두 기둥을 왕의 이름으로 칭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탓할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이나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세우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하여 솔로몬은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의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던 것입니다. 야긴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 보아스는 권능이 그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기둥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의미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런 문제에 휩싸여 그 기둥들이 기울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기둥이 무너진다는 것은 대형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영적인 생명을 잃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기둥을 세우고 그것을 의지하기 보다는 엉뚱한 기둥을 세우고 그것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성전이든, 인생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이 세워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힘으로 우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야긴과 보아스라고 하는 두 기둥이 튼튼할 때, 우리의 인생은 튼튼하게 세워 집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신앙고백이 기초이다
건물을 지을 때에 가장 중요한 일은 기초공사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이 고백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초이다. 교회가 비전을 정하고, 유행하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여 성과를 거두었을지라도 그것이 교회의 기초는 아니다. 교회사가인 필립샤프(P. Schaff)는 “성경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대답이다”이라고 하였다. 개혁주의의 선구자인 칼빈도 참된 교회란 바른 신앙고백이 그 뿌리라고 하였고 루터도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의 참된 신앙 고백에 서 있지 않은 교회는 거짓 교회라고 하였다. 교회가 뜨거운 열정과 역동성은 가지고 있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철골(鐵骨)인 신앙 고백이 분명하지 않으면 결국 힘을 잃고 추락하게 되어 있다. 참된 신앙고백이 없으면 이단의 열심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일도 일어난다. 신앙고백을 날마다 하시기를 바란다. 칼빈은 시간이 나는 대로 하라하였다. 이름만 갖다 붙인 개혁교회가 아니라, 역사적 교회가 고백해온 동일한 신앙고백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