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로마서14:1-12
지금 로마교회가 로마제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박해를 받는 일도 견디기가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비판하면서 상처받고 상처를 주는 일로 인하여 교회는 약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음식문제와 특별한 날(日)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에 대해서 두 가지 입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음식에 귀신이 붙은 것이 아니니 먹어도 된다는 입장과 거리낌으로 먹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1절) 각자가 가지고 있는 존중해주고 시비거리고 삼지 말라고 합니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3절),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5절)라고 합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확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영접해주고 자라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품으면 사람이 변하고, 고쳐지고, 귀신도 떠나갑니다. 하나님이 나를 받으셨듯이 그들도 받으셨기에 서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모두가 형제요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는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한 사람이 있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안 먹느냐의 문제는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입장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비난하면 관계가 깨어집니다. 따지거나 시비 거는 일을 즐기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도 인격이 성숙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 하나 바꾸는 일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찌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남을 바꾸려는 노력의 반만 기울여도 내가 먼저 바뀝니다. 그 사람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권력이고 내가 먼저 바뀌어야겠다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내가 바뀌면 그 사람도 언젠가 소리 없이 바뀝니다.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비(非)본질적인 문제는 포용해야 합니다. 성경 자체와 하나님과 인간과 그리스도와 구원과 교회와 종말에 대한 것은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적인 문제, 개인 성향의 문제는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보수주의자, 하나님보다 더 정통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6-9절까지 "위하여"라는 말씀이 8번이 나오고 "산다"는 말씀도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두 단어를 연결해보면 "누구를 위하여 사는가"라는 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는”이라는 말은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왜? 사는가가가 중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동일해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다르면 죽음의 끝자락에 섰을 때 살아왔던 삶에 대하여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살 수는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살아야 될 이유와 죽어야 될 이유가 동일하였기에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삶과 죽음의 이유가 동일할 때, 죽음의 순간에 비겁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선고받는 그 순간에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바로 지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하고, 배만을 위하여 사는 인생은 결코 행복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께 말씀을 드릴 때가 올 것입니다.(12절)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만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의 입술로 말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주 비판적이고 잘난 척하고 살았다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은 사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목사
꼭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에서 더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7가지 요소
마하트마 간디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7가지 요소를 "노동하지 않고 얻은 부, 양심이 결여된 쾌락, 인격이 결여된 지식, 윤리가 결여된 사업,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원칙이 없는 정치, 그리고 사랑이 없는 종교"라고 했다. 탁월한 분석이다.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사랑이 없는 종교이다. 시대의 격변기에는 힘을 가진 자들은 정치적인 입장이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제거한다. 강하게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자가 성직자와 그의 종교를 싸잡아서 매도하고 협박한다. 그래서 입을 다물게 한다. 그의 정치적인 발언과 행보가 100% 순수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럴지라도 지금 기독교가 앞장서서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거나 이단 옹호자로 낙인 찍는 것은 매우 비겁한 일이다. 1992년 시한부 종말론 광풍이 불 때에 수많은 교회와 지도자들이 겨와 같이 날렸다. 성도들을 지키지도 못했다. 그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이단옹호자들이었다. 지금 길 잃은 양처럼 아스팔트를 누어있는 성도들은 누구의 양인가? 누구를 정죄할 것인가? 사랑도 없고 비겁하기까지한 지도자는 정말 흉하다. 나라 생각... 교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