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나의 지식이 놀랍습니다
시편139:1-24
본 시편은 많이 알려져 있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139편을 “모든 시편의 왕관”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139편은 신앙적인 면뿐만 아니라 시적인 면에서도 아름답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얼킨스는 ""내 임종 시에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139편을 읽어주시오.""라고 했고 신학자 슈미트(Carl Schmitt)는 ""이 시야말로 신실한 인간의 영혼과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침묵의 시요, 침묵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내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도 더 잘 아십니다. 대충 아는 것이 아니고 아주 자세히 아십니다. 어떤 때는 거추장스럽고 간섭을 받는 것 같으나 아시기에 나를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신다고 했습니다.(시121:4절)
하나님에게는 거기가 어디든지 간에 주님은 시간이고 공간의 개념이 없습니다. 순간적 개념이며 동시적 개념입니다. 나의 앉고 일어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앞에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생각을 동기를 꿰뚫어 보십니다. 나의 동기, 내가 원하는 소원, 내 목표, 내 생각, 내 야망을 사람에게는 숨길 수가 있습니다. 도박하는 사람이 좋은 패를 가지고 있으면서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겉으로는 숨기는 것처럼 얼마든지 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십니다. 내 혀의 말을 아십니다.(4절) 말들이 공중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말들이 하나님 앞에 기억된바 됩니다. 말을 씨요, 씨는 심은 대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어떤 말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아실 뿐 아니라 우리가 사망 가운데 있을 때에 알고 방관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사망이 우리의 전후를 두르고 우리가 힘들게 할 때 주님은 완벽하게 보호 해주십니다.(5절) “안수”라는 이 말은 “그 위에 당신의 손을 두었나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손이 우리 머리 위에 하나님의 손이 항상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지식이 너무 귀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6절) 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놀라운 모릅니다. 그러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가 하나님이 불의하신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주님이 아시며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해나가시는 절대 지식, 하나님의 해나가시는 절대 행위를 믿어야 하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니까”(7절) 하나님이 피하여 숨는 길은 없습니다. 우주에 한 곳도 없습니다. 저 하늘 높은 곳에 가서 피한다고 할지라도 낮은 곳에 땅을 파고 들어가서 거기 누워 있다 할지라도 찾아야 낼 것입니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갈지라도”(9절) 어둡다가 해가 뜨면 순간에 세상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태양 빛이 빠르게 저 땅끝까지 비치는 것처럼 내가 빛을 타고 날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빛의 속도로 우주 끝에까지 가는 데는 수백만 년이 걸립니다. 거기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님의 손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나의 오장육부(五臟六腑)아십니다.(13절)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의 모든 날들을 다 기록하셨습니다. 박윤선(朴允善) 박사님은 “우리의 수명이 얼마나 길겠는지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명의 장단에 대하여 알려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16절) 그 정한 시간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손끝에 내 생명이 있습니다.
■유튜브 [박근상목사]에서 더 자세히 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CCTV
어디를 가도 CCTV가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CCTV가 있는 곳에서는 모습을 숨길 수가 없다. CCTV는 우리의 겉모습만 살피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까지 다 아시는 분이시다. 심지어 하나님앞에서는 죽음조차도 피할 수 없는 분이시다. CCTV를 설치하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목적은 감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CCTV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조심을 하게 된다.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과속단속 카메라를 만나면 규정속도로 가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 번 속도계를 본다. 범죄가 발생할 때도 수사 하는 사람들은 CCTV를 자세히 살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시는 것은 결코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조심도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훨씬 크지 않습니까?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