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그처럼 노하셨을까?
신명기29:22-29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겪을 일들을 마치 가상현실처럼 펼쳐가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우상의 독에 서서히 중독되고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문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비 늦은 비로 풍성하게 채워 주시던 땅은 심판을 받은 소돔 고모라처럼 유황과 소금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그 땅이 농사를 지어 먹을 수 없는 황무지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23절)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도 이걸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24절)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노를 발하시는가? 건지시고 인도하시고 물리치시고 그 땅을 주셨는데 왜 그 땅에서 쫒으시는가? 이것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신학적인 질문입니다. 악인은 바람에 다른 겨와 같이 심판의 바람을 보내실 때에 하나도 남김없이 날려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안에 뿌리를 내린 삶은 시냇가에 뿌리를 내린 나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시1편 렘17장 7절 8절)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그 땅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큰일을 하셨습니까?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우상에게 절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어찌 하나님이 그냥 두실 수가 있겠는가?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26절)고 하십니다. 그 백성을 번쩍 들었다가 다른 나라의 집어 던져 버리고 바람이 나는 겨와 같이 흩으십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하여 큰일을 행하신 그 손으로 그 백성들을 뽑으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절망을 아닙니다. 하나님을 뽑으신 것을 심을 줄 수도 있고, 발끝까지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는 자를 고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이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구원을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감춰진 일이 있고 나타난 일이 있습니다.(29절) 어떤 일을 아예 감추어 누구도 알 수가 없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뿐입니다.
욥도 자신이 왜 고난을 받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많은 말을 하였으나 결론은 “알 수 없다”입니다. 나와 같은 자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판단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길을 어떻게 인간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롬8:33)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있겠는가? 또 누가 하나님더러 이래라 저래라 충고할 할 수 있겠는가”(롬8:34) “누가 하나님께 보상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겠는가”(롬8:35) 모든 만물이 다 주로부터 나왔고 주님으로 말미암고 존재하고 주께로부터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에게만 세세토록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롬8:36) 이해하지 못 한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믿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오직 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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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소망에 대하여 묻거든
기독교가 하나의 종교적 장식이나 상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피상적으로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아는 바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전 생애를 걸고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하여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ㅂ명히 말해야 한다. 그래서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동일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같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상황에서 복음이 우리의 답이 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믿음의 소망이 우리를 지배해야 한다. 생각이나 기억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분명한 가치, 신앙, 고백에서 나오는 말이어야 한다.
-오늘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