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왕상17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5월 17일 오전 08:23
- e 359
절망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열왕기상17:17-24사르밧 과부는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가 되었고 아들 하나를 자기 자신처럼 아끼면서 의지하며 살았는데, 아들이 죽는 일을 겪게 됩니다. 이 여인은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냥 감추어질 문제들인데도 선지자가 나타남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상황이 좋지 않게 됐다고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여인은 이제까지 하나님의 종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지냈던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굶주리고 있을 때 기름과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매일매일 찬송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며 살아왔던 그런 사람입니다.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 덕분이라고 떠받들던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선지자가 왔기 때문에 죄가 하나님 앞에 드러났고 내 아들이 죽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죄가 어떤 것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여인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자기 죄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당한 고통을 자기가 과거에 지었던 죄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언제 우리의 믿음이 증명되는 겁니까? 고난 속에서 그 사람의 믿음이 증명되는 겁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편안하고 모든 일이 잘될 때 사람들이 다 나를 인정해 줄 때 그럴듯하게 나설 수 있을 때, 믿음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고개도 들 수 없는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어질 때 그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그 사람이 하고 있는 말들과 반응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지금 자신을 비난하고 절망하는 여인도 ...엘리야도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살아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그런 대단히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이를 살려달라라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진실로 그 여인과 그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긍휼히 여겨 달라고 진심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하건데”(21절) 이 말은 간절한 소원의 표시입니다. 살려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입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살려주셨습니다.(22절) 생명이 돌아왔습니다.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23절) 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어떤 교훈이나 윤리 도덕이 아닙니다. 생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구원을 얻은 자가 살아서 뛰기도 하며 걷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내가 이제야”(24절) 전에도 하나님을 믿었으나 관념으로 믿었고, 생각으로 믿었고, 심정적으로 믿었습니다. 이제는 사건으로 믿었습니다.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말입니다.”내가 이제야“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 신앙이 능력이 나타납니다. 새 생명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고 생명을 경험하고 생명을 이 땅에 증거하는 그런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
새벽기도 나서시는, 칠순 노모(老母)의 굽어진 등 뒤로 지나온 세월이 힘겹다. 그곳에 담겨진 내 몫을 헤아리니 콧날이 시큰하고, 이다음에, 이다음에 어머니 세상 떠나는 날 어찌 바라볼까.. 가슴에 산(山) 하나 들고 있다”-김윤도- 시인(詩人)은 어머니의 굽어진 등에는 세월의 무게뿐 아니라 자신의 몫이 있었다고. 그렇다. 어른들의 굽어진 등은 세월만이 만든 것도 아니요 자녀들이 태어날 때부터 시집 장가 간 후에도 얹어 놓은 짐들이 부모님들의 등을 굽게 만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굽은 등은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김윤도- 유튜브방송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