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죽은후에 삼하1장
- 주기도문기도운동
- C 2023년 4월 10일 오전 11:28
- e 646
사울이 죽은 후에
사무엘하1:1-16-
사무엘하는 “사울이 죽은 후에”로 시작됩니다. 사울의 패배와 죽음과 다윗의 승전이 겹치는 상황에서 다윗의 됨됨이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울의 죽음을 기회로 삼았으나 다윗은 진심으로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시대를 끝내시는 것을 같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돌이켜보면 고난과 영광 슬픔과 기쁨 만남과 이별이 있었습니다. 낮아짐과 높아짐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 속에는 초자연적인 기적도 없고 도덕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살라 하는 교훈도 없습니다. 인간적인 다윗의 모습을 드라마처럼 기록할 뿐이고 미화시키거나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다윗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온 후 폐허가 된 성을 복구하고 있을 때 3일째 되던 날에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말렉 사람이 하나가 다윗을 찾아옵니다. 다윗이 그에게 묻기를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4절)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나이다”(4절) 왕과 왕세자가 죽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의 패배와 블레셋의 승리를 기쁜소식처럼 전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죽음을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고 달려온 것입니다. 아말렉 사람은 사울이 자기를 죽여달라고 요청을 해서 칼을 뽑아서 왕을 죽게 했다고 보고합니다. 다윗이 차기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다른 사람의 불행을 재구성을 해서 자기가 왕을 죽인 자로 역할을 바꾸어서 거기에다가 자기를 집어넣은 것입니다. 자신의 무용담을 말하듯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왕관과 팔찌까지 보여 주면서 입증하려고 하였습니다. 왕의 죽음을 명예를 얻을 기회로 생각한 것입니다. 다윗은 오랜 세월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겼습니다. 단 한 번도 사울의 자리를 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아멜렉 사람의 말에 다윗은 조금도 기뻐하지 아니하였고 잔치를 벌이지 않았습니다. 이 순간 주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윗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진실한 마음으로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합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도 함께 통곡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윗에게 마음을 주었고 충성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이 청년은 더 이상 한마디도 변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판 함정에 스스로가 빠진 겁니다. 이 청년은 슬퍼하는 다윗과 그의 동료들을 보면서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그때야 가서 비로소 알아차렸을 것이고 다윗에게 용서를 구할 겨를도 없이 결국 죽음의 대가를 치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기를 원했다면 예전에 죽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 청년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그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 청년이 자기 입으로 말한 대로 죄를 묻고 그를 처형합니다. 이 청년은 다윗을 자기 수준으로 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서 출세하려고 권력을 잡아보려고 했다가 결국은 비극으로 그 인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라고 했습니다.(롬12:15) 이 땅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슬픔과 고통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고 눈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품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 리더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시작이다
사울이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줄 알았으나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울이라는 짐 하나만 사라진 것 뿐 또 다른 짐으로 채워졌다. 그것이 인생이다. 사울만 죽으면 저절로 왕이 되는 줄 알았는데 더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그것이 인생이다. 왕이 공석인데도 낙하산 타고 내려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정상으로 오르는 것을 배우게 하셨다. 그것이 인생이다. 정상에 있을 때 비참하게 넘어지고 개망신 당했다. 그것이 인생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사무엘하서는 그런 다윗의 이야기이다. 이제 출발한다.
-오늘아침- 유튜브 [박근상매일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