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산파
출애굽기1:15-22
애굽이 7년 동안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을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요셉의 지혜로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백성들이 편히 지냈습니다. 요셉이 애굽을 구했습니다. 바로 왕은 요셉을 귀하게 여기고 그의 가족들까지 돌봐 주었습니다. 요셉을 돌봐 주던 바로 왕조가 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세워집니다. 그 때부터 요셉의 가족들은 노예로 절락하게 됩니다. 노동력만 제공하는 노예였습니다. 말할 수 없이 학대를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고 번성하고 그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11절)
바로가 큰 위협을 느끼자 이제는 출산을 방해하는 출산을 제한하는 정책을 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 산파들에게 아이를 받을 때 남자이면 무조건 죽이라고 하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산파들은 왕의 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왕이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서 추궁을 합니다. 산파는 이를 악물고 담대하게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나이다.”(19절) “애굽 여인과는 다르다” 산파는 마치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고 찬양하듯이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찬양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이 말은 100% 거짓말은 아닙니다. 사실이 그러하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어서 바로도 더 이상 묻지를 않았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400년 동안 힘든 애굽 생활속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겼습니다. 분명한 신앙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애굽 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를 살린 산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고 했습니다.(20-21절)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하는 자는 어떤 곤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생명이 생명의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태어나는 그 생명을 손으로 받는 것은 바로 산파의 일입니다. 그래서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은 천하를 살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구역가족을 인도하는 구역장, 말씀을 전하는 자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은 바로 산파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산파의 역할을 하는 자는 생명을 존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애정을 가진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도 사탄은 생명의 출생을 방해하고 실패하게 만듭니다. 산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생명을 품에 안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로 곧바로 남자를 낳으면 나일강에 버리라고 명합니다. 애굽 사람에게 나일강은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는 제물로 바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 일을 통해서 모세가 바로 왕의 공주에 눈에 띄었고 궁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 시켜서 그 백성을 구원하는 준비를 하게 하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여지는 거룩한 산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석장로교회 박근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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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리는 일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생명 살리기 위해 섬기셨고, 잃어버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 찾도록 찾아다니셨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셨고 죽으셨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부활하셨다. 성경은 예수를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쓰여 졌다. 성경을 읽고, 들을 때 생명이 살아난다. 소망을 얻게 된다. 생명을 살리는 일,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극치의 가치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교회가 세워졌다. 생명을 살리는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가장 귀한 일은 생명 살리는 일이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오늘 아침-